No. 1470 칼럼니스트 2008년 9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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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11)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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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는 전용관이 없다. 개·폐막식은 수영 요트경기장에 야외상영관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진행한다.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야외상영조차 어렵게 됐다. 일반상영은 극장을 임대해서 하지만 '추석대목'에는 빌릴 수 없다. 때문에 영화제 개막일은 추석날짜에 따라 해마다 바뀐다. 전용관이 없으니까 프레스센터를 비롯한 업무공간도 일정치 않다. 극장주변의 빌딩 중 비어 있는 사무실을 찾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제들은 전용극장을 갖고 매년 일정한 기간에 영화제를 개최한다. 칸영화제의 전용관인 팔레 드 페스티벌, 이 건물에는 2400석의 뤼미에르극장, 900석의 뒤비시극장을 비롯하여 10여 개의 극장이 있다. 기자회견을 비롯한 모든 영화제 업무가 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진다. 베를린의 신시가지 포츠다머 프라츠에 새로 지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는 3000석의 좌석과 현대식 시설을 갖춘 뮤지컬극장이다. 베를린영화제는 이 건물을 메인극장으로 사용하면서 주변의 소니센터, 시네막스, 시네스타 그리고 쿠담지역의 극장을 사용한다.

로테르담영화제의 파테극장은 2층의 넓은 홀에서 7개의 극장을 출입할 수 있게 설계한 매우 실용적인 건물이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우루메아강과 코차만이 마주치는 해변에 조성한 산 세바스찬의 쿠루잘은 너무나 환상적인 건축물이다.

나는 이런 건물들을 영화제의 전용관으로 갖고 싶었다.
대선을 앞둔 2002년 11월, 우선 기자들과 공모(?)해서 4당 후보로 하여금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 건립을 공약하도록 유도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미디어센터 건립을 약속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문화관광부를 거쳐 기획예산처에 전용관 건립사업비로 100억 원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2003년 9월 5일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로부터 예산 40억 원 반영을 약속 받았다. 3일 뒤에는 부산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안상영 시장의 건의를 수용함으로써 드디어 2004년 예산에 용역비 10억 원, 설계비 30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해 예산에는 국비 230억 원, 지방비 230억 원을 합친 460억 원이 건축비로 책정됐다.

나는 여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600억~700억 원 규모의 랜드마크가 될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2년과 2005년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두 번 방문했고, 2003년 11월 23일에 개관한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도 두 번을 찾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호주를 상징하듯이 부산영상센터가 부산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굳혔다.

그런 맥락에서 부지는 바닷가를 고집했다. 제1 후보지로 파라다이스호텔 옆 옛 극동호텔과 토지공사 및 국방부 땅을 천거했다. 토지공사 사장도 만났고 극동호텔 부지공매에서 낙찰받은 인사들도 만났다. 부산시와 공동으로 조성하는 방안들을 협의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500억 원이면 매입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기 짝이 없다.

제2 후보지로 요트경기장을 제의했다. 20년 전, 86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조성한 요트경기장의 건물은 초라했다. 이 건물을 헐고 영상센터와 요트경기장을 함께 수용하는 초현대식 건물을 지어 1~3층은 요트경기장, 4층 이상은 영상센터로 사용하자고 제의했지만 이도 거부당했다.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였던가.

결국 부산시가 조성해 놓은 센텀시티로 귀착됐다. 이 과정에서 실무 책임자들과 적지 않은 의견충돌을 빚기도 했다. 앞으로 조성될 영상센터의 옆과 뒤에 신세계쇼핑몰, KNN부산방송, 동서대학교, 영상후반작업기지,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건립될 예정이어서 차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자 선정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국제 현상공모를 주장했고 특히 세계건축가연맹이 주관하는 일반 공개경쟁 방식이 아닌 부산시가 주도하는 지명경쟁 방식을 끝까지 고집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주장대로 최종 7명의 세계적인 건축가가 선정되었다.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다.

제10회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중 부산에 초청된 7명의 건축가들은 심사위원과 시민을 상대로 작품발표 및 공개심사, 중앙과 부산의 주요 초청인사 대상의 기념식과 모형전시, 그리고 2차에 걸친 심사회의를 거쳐 오스트리아 건축가 쿱 힘멜바우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대두되었다. 설계대로 건축할 경우 예산 460억 원을 훨씬 초과하는 1200억 원이 소요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책정된 예산을 초과할 수 없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문화관광부와 기획예산처를 대상으로 설득작업에 나섰다. 문화관광부의 박양우(현 차관) 실장, 기획예산처 신철식(현 국무조정실 차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만나 터놓고 상의했다. 장병완(현 장관) 차관과 담당 국장을 만났다. 그로부터 또 1년 8개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이재웅, 윤원호 의원 등 부산출신 국회의원, 김인세 부산대총장, 최인호 비서관 등 부산지역 인사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신정택 상의회장의 적극적인 도움은 잊을 수 없다. 앞으로도 건축비증액에 대한 KDI의 사전 예비타당성 검토에 대한 최종결론, 기획예산처의 2009년도 예산반영, 개관 후의 운영프로그램 마련 등 많은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부산영상센터는 부산시의 건물이고, 건설주체도 부산시다. 460억 원이든 1200억 원이든 지어주는 대로 사용만 하면 된다. 하지만 기왕이면 1000년 후에도 부산이 자랑할 수 있는 건축물을 남기고 싶었다. 이 건물이 설계대로만 완공된다면 부산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국제신문(200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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