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9 칼럼니스트 2008년 9월 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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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10)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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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27일 오후 4시 코모도호텔에서는 '아시아영화의 미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단상에는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현 베니스집행위원장),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토론토 영화제 프로그래머 데이빗 오버비(작고),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피엘 리시앙과 막스 테시에 등이 자리했다. 모두 아시아영화 전문가들이었고,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PPP(Pusan Promotion Plan)의 출범과 함께 열린 이 토론회는 내용보다는 토론자들 때문에 숱한 화제를 남겼다.

마르코 뮐러와 토니 레인즈, 피엘 리시앙과 데이빗 오버비, 그리고 피엘 리시앙과 막스 테시에는 견원지간에 비유될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피엘 리시앙과 토니 레인즈 사이도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불협화음의 극치'를 보여준 이 세미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명장면을 연출했다는 후문이다.

부산영화제 창설 준비가 한창이던 1996년 4월 10일, 나는 주한스위스대사관 문정관 집에 초청받았다. 마르코 뮐러의 방한을 계기로 그와 친척관계에 있는 문정관이 스위스대사 부부와 메세나 협회의 김치곤 사무처장 그리고 나를 집으로 초청한 것이다. 나는 마르코 뮐러에게 영화제창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협력을 부탁했고 그는 쾌히 승낙했다. 그러다가 나는 무심코 토니 레인즈가 돕고 있다는 말을 하자 그는 즉각 안색이 변하더니 "그렇다면 같이 잘해 보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영화제에 관한 말을 중단했다. 알고 보니 중국영화 전문가인 두 사람은 경쟁관계였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르코 뮐러는 그 후 계속 부산에 초청했지만 1, 2회 때는 불참했고 3회영화제 PPP행사에 참석했다.

사이가 나쁘기로는 오랫동안 베를린영화제를 이끌던 모릿츠 데 하델른과 울리히 그레고르가 손꼽힌다. 하델른은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발탁된 후 22년간 재임하다가 2001년 제51회영화제를 끝으로 물러난 세계영화계의 거물이다. 베를린영화제를 맡기 전에 그는 로테르담영화제를 거쳐 로카르노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일하면서 1970년 부인 에리카 여사와 함께 '영포럼'부문을 창설한 그레고르도 31년간 그 책임자로 있다가 하델른과 함께 퇴장했다.

이 두 사람은 베를린영화제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20년이 넘게 함께 일했지만 성격이나 일하는 스타일이 전혀 다른 데다가 항상 경쟁관계에 있었다. 또 하델른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그레고르가 그 후임으로 거론되어 왔다. 그 결과 두 사람 사이는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과 부산국제영화제와는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레고르는 부산영화제 이전부터 영화선정을 위해 서울에 자주 왔었고 한국의 감독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나도 몇 차례 만났었다. 영화제 창설 준비를 위해 홍콩에 간 나는 그레고르를 만나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 못하고 부인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영화평론가인 부인 에리카 여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런데 이것이 하델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해 11월 영화선정차 영화진흥공사를 찾은 하델른은 영화선정 자료로 제공한 부산영화제의 카탈로그를 본 순간 에리카 그레고르가 어떻게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느냐고 폭언하면서 영화도 보지 않은 채 돌아가 버렸다.

베를린영화제에서 몇 년째 한국영화가 본선 경쟁부문에 선정되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나는 하델른과의 관계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1998년 2월 베를린에서 그를 만났다. 마침 바로 직전에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부산영화제와 자매결연 행사를 갖고 칸영화제 사무실에 들러 질 자콥 위원장과 업무협의를 마친 직후였다.

하델른은 나를 만나자마자 네 가지만 묻겠다고 하면서 1회 영화제에 에리카 그레고르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이유, 로테르담에서 어떤 행사를 가졌는지, 칸영화제와는 무슨 커넥션이 있는지, IMF상황에서 영화제는 존속할 것인지를 질문했다. 그의 질문은 직설적이었고 그 밑바탕에는 부산영화제와 울리히 그레고르와의 우호적인 관계에 대한 불만과 칸영화제와의 경쟁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 이후 칸과 베니스 등에서 몇 차례 그를 만났다. 그해 3회 영화제에서 칸과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한국영화공로상'을 주었고 다음해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이 상을 전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릿츠 데 하델른의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소식을 데일리뉴스에서 읽은 에리카 그레고르가 대로했다. 이미 첫 영화제에서 그녀의 남편이 이 상을 제일 먼저 받았지만 그녀의 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해명하는 편지도 보냈고 칸에서도 만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해 9월 베니스에서 만나 조찬을 함께 하면서 "없었던 일로 하자"고 화해를 했다. 그런데도 앙금은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 8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심사를 같이 하면서 앙금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실로 3년 반 동안 정성을 쏟아 복원한 인간관계였고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지금은 그 전보다 더 친해졌다.

물론 모릿츠 데 하델른과는 '한국영화공로상' 이후 친해질 수 있었고, 그가 베를린을 떠나 베니스 집행위원장으로 옮겼을 때도, 뉴 몬트리얼영화제를 창설했을 때도, 그리고 그 자리마저 물러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낸다.

국제영화계에도 많은 인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얽히고 설킨 친소관계도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 이런 복잡한 인간관계속에서 '모두가 친구'가 되는 독자적인 인맥을 형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바로 여기에 영화제를 이끄는 집행위원장들의 고민이 있다.  

      -국제신문(200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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