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8 [칼럼니스트] 2008년 9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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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을이 오지 않는다면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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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가지 않고, 가을도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아이라면 몰라도 정상적인 사람이 이처럼 유치하고 황당한 생각을 할 리 없다. 그러나 나는 혼자 속으로 은근히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1994년 여름에 그랬다.

툭하면 사망설이 나돌던 김일성이 진짜 죽은 때로 그 해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끔찍하고 지독하던 더위로 94년도를 기억한다. 기록에 따르면 그해 7,8월 서울지역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3.7℃ 높은 28.0℃이었고, 7월24일에는  38.4℃까지 치솟았다.

또 초복부터 말복까지 약 30일간의 열대야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 9일이며 근년에는 12일까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상관측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었던 94년 열대야는 무려 27일이었다. 그 무렵 애를 낳았던 어느 주부는 어찌나 더위에 고생을 했는지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더워도 견디어낼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사람이 밤에 앉을 수 없고, 서 있을 수도 없으며, 누울 수까지 없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그때 절실히 느꼈다. 너무 더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다. 연일 달구니 집안의 벽과 기둥들조차도 후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온도가 낮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욕실의 벽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근처 포장마차와 맥주집들이 한밤중에 호황을 누렸다. 잘 수 없는 주민들이 아예 밖으로 나온 것이다.

회사에 나가 노트북을 켜면 작동을 하자마자 비실비실하고, 키보드를 치면 딴 글자가 나타나는 등 컴퓨터도 더위를 단단히 먹었다. 하루하루가 열탕에서 허우적대는 지옥이었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반드시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한달 가까이 잠 한번 제대로 못 자니 머릿속은 푹 삶아 놓은 것 같고, 정신은 멍멍하기 일쑤였다. 그때 나는 어쩌면 여름이 절대 물러나지 않고, 가을도 결코 오지 앉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 것은 해가 날마다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당연하지만, 그것이 영원불변의 진리라고 단정은 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식하지 못한 우주의 다른 변수가 잠재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다 보니 열대지방처럼 다시는 가을 구경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한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고 황당한 생각을 가엾게 여기며 달래주듯 그래도 가을은 왔다. 워낙 여름 흔적이 강해 그 찌꺼기가 9월이 다 가도록 말끔히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때처럼 가을을 고맙게 여긴 적이 없다.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고, 나가서 고생을 한 뒤에 집과 부모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듯, 여름 다음에 당연히 오는 것이라고 여기던 가을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 무렵 동남아에 출장을 갔다. 어렵사리 찾아온 가을을 저만치 밀어두고 또 다른 여름을 찾아 간 꼴이었다. 정말로 가을이 올 리 없는 곳을 간 것이다. 그걸 상기하니 폭염에 쌓인 싱가포르의 아름다운 숲이나 쿠알라룸푸르의 멋진 거리가 내게는 더위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느 건물이건 에어컨이 작동해 시원했지만 그게 하루 종일, 일년 열두달 그래야 된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니 끔찍했다. 가을에 대한 고마움만 더욱 확실해진 것이다. 물론 그곳 사람들은 그 기후 적응이 체질화되어 가을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는 가을 없는 세상을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 뒤 서울은 한 겨울인 1월초,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 가서 우리로 치면 한 여름 같은 날씨를 겪으면서 가을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일깨우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느긋하게 견디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가을뿐만 아니라 당연히 오는 다른 계절을  비롯 일상생활의 많은 것들에 대해 고맙게 여기고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도 틈틈이 가꾸고 있다. 여름 등 여러 계절을 무사히 지나 온 곡식, 과일을 비롯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예사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 철이 좀 든 셈이다.

장석주의 시 ‘대추나무’가 그런 마음을 잘 헤아려 준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행정공제회 '웹진' 8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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