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7 칼럼니스트 2008년 8월 3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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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9)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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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베스트 에피소드 3선

 ❶ 택배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1998년 9월 26일 밤 9시, 남포동 부산극장 2관에서는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소무'가 상영되었고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에서는 밤 10시에 '프랑스 영화의 밤' 행사가 열렸다. 나는 남포동에서 영화상영 전에 관객에게 지아장커 감독을 소개한 다음, 해운대로 건너가 프랑스 대사가 참석하는 '프랑스의 밤' 행사에서 축사를 해야만 했다.

부산의 심각한 교통상황에 비추어 남포동에서 해운대까지 한 시간 이내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그날은 엄청난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토요일이었다. 궁리 끝에 택배 오토바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티바이크사'에서 보낸 오토바이는 자전거보다 조금 클까, 초라했다. 비록 헬멧은 착용했지만 매연 속에서,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차량과 차량 사이를 곡예하듯이 누비며 달렸다.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택배 오토바이 두 대가 앞뒤로 에스코트를 해주었지만 다음날부터는 한 대로만 달렸다.

이렇게 3회영화제 때 시작한 택배오토바이는 영화제의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진 7회 영화제까지 만 5년 간 계속됐다. 보기가 민망했던지 택배회사에서는 만 5년이 되던 2002년에 최신형 오토바이로 교체했지만….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택배 오토바이', 이따금 술자리에서 이 일화가 '안주'가 될라치면 조각가 최만린 교수는 오토바이에 앉는 내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농반 진반으로 말하곤 한다.

❷용기 북돋운 '올해의 부산인상'

1997년 11월 4일, 제2회 영화제가 끝난 직 후 나는 '신사고 포럼'에서 주는 '올해의 부산인상'을 받았다. 신사고 포럼은 전·현직 언론인과 대학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친목단체. 이를테면 부산의 여론형성층이 모인 단체인 셈이다.

이 상을 수상할 당시 나는 심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제1회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부산의 영화계와 언론계 일각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왜 서울사람들이 와서 하느냐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회영화제마저 성공하면서 이 여론이 표면화되었다.

나와 함께 영화제를 창설했고 경성대에서 10년간 재직했던 이용관 교수조차도 제1회 영화제가 끝난 후 '부산정서'에 대한 갈등으로 사퇴하겠다고 3개월간을 고집했을 정도였다. 나도 몇몇 사람에게 3회까지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의 여론형성인사들이 모인 신사고 포럼의 '올해의 부산인상'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했고 영화제에 대한 의욕과 집념을 불태우게 한 계기가 되었다. 회원 간의 격론 끝에 부산사람이 아닌데도 부산인상을 주는 것이 '신사고' 정신에 맞는다는 논리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한다.

지난 2005년에는 젊은 한국 감독들의 모임인 '디렉터즈 컷'의 이현승 회장으로부터 깜짝쇼로 명예감독증과 함께 '디렉터즈 체어'를 받았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여한 직후의 일이었다. 한국영화를 해외에 빛낸 감독들, 임권택,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이 의자를 받았을 때의 감격 또한 컸다.

그 후에도 나는 이런저런 사유로 적지 않은 상을 받았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은관문화훈장과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을 받았고 올해에는 프랑스정부의 훈장도 수상했다. 그러나 '올해의 부산인상'과 2000년 10월 5일에 받은 부산MBC의 제1회 부산문화대상, 그리고 2004년 12월 17일 늘솔회에서 받은 '늘 푸른 소나무상'은 부산시민으로부터 받았다는 점에서, 디렉터즈 체어와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은 영화계로부터 받았다는 점에서 가장 값진 상이 아닐 수 없다.

❸라스팔마스를 달군 교민축제

테네리페, 그란 카나리아, 라 팔마 드 등 다섯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형성된 스페인 영토 카나리아군도는 아프리카 북서쪽 대서양 상에 있다. 이들 섬 중 그란 카나리아의 수도인 라스팔마스는 스페인 최대의 휴양지이며 한 때 우리나라 원양어업 전진기지로 신문, 방송에 자주 등장 했던 곳이다.

라스팔마스에는 원양어업에 종사하다가 정착한 한국교민 800여 명이 살고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이 부산사람들이다. 바로 이곳에서 2004년 3월 12일부터 20일까지 제5회 라스팔마스영화제가 열렸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이 영화제에는 개항 이후 처음으로 한국영화 12편이 초청됨으로써 교민들을 열광시켰다. 모든 교민들은 만사 제쳐 놓고 하루 두 세 편의 한국영화를 보러왔다.

배점철 총영사와 교민회 대표들은 나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참가한 장선우 감독, 정재은 감독과 함께 배우 옥지영을 환영만찬에 초청하기도 했다. 특히 부인회에서는 현지 시장을 비롯한 기관장과 영화제 게스트 300여 명을 초청, 정성껏 마련한 우리음식을 대접하는 '한국의 밤' 행사를 마련했다. 영화제를 계기로 한국교민들의 축제가 열린 셈이다. 더구나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함으로써 축제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나는 낯선 영화제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 노년의 은퇴 영화인과 젊은 영화감독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팜스프링스영화제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 백야의 어둠 속에서 열리는 에스토니아의 블랙나이트영화제, 경관이 뛰어난 해변의 산세바스찬영화제…. 이 중 백미는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졌던 라스팔마스의 교민축제였다.  

       -국제신문(20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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