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5 칼럼니스트 2008년 8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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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7)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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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창설하면서 돈 마련에 동분서주해야 했지만 첫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다시 정부예산을 따는 일에 몰두해야 했다. 원천적으로 독립채산이 불가능한 국제영화제에서 정부로부터의 예산지원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60주년을 맞이한 칸영화제의 올해 예산은 2000만 유로(약 260억 원)이며 57주년의 베를린영화제 예산은 1600만 유로(208억 원)였다. 이들 영화제는 예산 가운데 정확히 50%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올해 64회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베니스영화제는 규모면에서 부산영화제보다 작지만 예산은 훨씬 많은 1000만 유로에 달한다. 베니스를 능가하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출범한 로마영화제의 경우 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난해 1200만 유로, 올해 1500만 유로의 예산이 책정됐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예산은 올해 80억 원으로 이들에 견주어 초라한 수준이다. 이 중 정부 지원 14억 원, 부산시 지원 30억 원이었고 극장입장료 6억 원을 제외한 30억 원은 기업협찬금으로 충당했다.

부산시에서 3억 원만 지원받아 22억 원의 행사를 치러야 했던 당시로서는 정부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먼저 문화체육부부터 설득했다. 실무자들은 신규사업비의 계상을 주저했지만 송태호 장관, 김종민 차관의 도움으로 30억 원을 재정경제원에 요구할 수 있었다.

재정경제원의 심의과정에서 어렵게 7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1998년 1월, IMF 이후 예산의 축소 재편성 과정에서 5억 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의 도움을 받아 되살렸다. 이렇게 해서 1998년도 제3회영화제 예산에 처음으로 7억 원의 정부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해인 1999년도 예산은 10억 원으로 늘었다. 1999년도 예산을 다루고 있던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회의 계수조정 마지막 날 나는 부산 출신의 예결위원장 김진재 의원을 만나 3억 원을 증액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0억 원의 정부보조는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2004년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2001년의 예산을 편성하던 2000년 여름,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기획예산처(재경원이 바뀜)는 모든 영화제에 대한 국고보조는 3회에 한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문화관광부나 부산시의 집요한 설득도 먹혀들지 않았다. 나는 지연과 학연을 동원했고, 결국 이수원(현 총괄국장) 과장의 도움으로 10억 원의 국고 보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2년도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도 기획예산처는 모든 영화제 지원예산을 동결했다. 부천의 김홍준, 전주의 최원, 여성영화제의 이혜경 위원장은 내가 나서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2001년 8월16일 기획예산처에 가서 전윤철 장관을 비롯한 차관, 실장, 국장을 차례로 만나 동결되었던 영화제지원예산(안)을 모두 전년도 수준으로 확정시킬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모두 신철식(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국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10주년인 2005년을 앞두고 기념사업비로 5억 원이 증액됨으로써 영화제 국고보조는 15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때에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국회 문화관광위원들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10억 원의 증액을 예결위원회에 요구한 것을 계기로 나는 이용관 부위원장과 함께 예결위원회 계수조정위원 전원은 물론 각 당의 원내대표까지 만나서 설득 작업을 펼친 끝에 5억 원을 증액할 수 있었다.

문화관광부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 영화제에 대한 평가와 이에 근거한 지원예산의 가감작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에 따라 부산영화제의 정부보조는 2006년에는 13억 원, 2004년에는 14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첫해에 3억 원을 지원했던 부산시는 1997년(2회)부터 2000년(5회)까지 4년간 매년 5억 원을 지원하는데 그쳤다. 그러다가 안상영 시장에 의해 2001년 7억3200만 원, 2002년 10억 원, 2003년 12억 원, 2004년에 13억 원으로 늘었고, 허남식 시장에 의해 다시 2005년에 18억 원, 2006년에 28억 원, 2007년에 30억 원으로 대폭 증액되었다. 정부나 부산시의 예산을 확보하는 일보다 기업의 스폰서를 구하는 일은 몇 배가 더 힘들었다. 지난 12년간의 메이저 스폰서의 변동만 보더라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취약하고도 불안정한 재정구조를 쉽게 알 수 있다.

고교동기인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 회장의 배려로 1, 2회 각각 3억 원, 3회 2억 원의 지원을 받았다. 2회 때 3억 원을 협찬했던 SK텔레콤은 센텀시티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면서 3회 협찬을 중단했지만 한때 차관을 같이했던 서정욱 사장의 도움으로 2000년에는 KTB 네트워크가 3억 원을 협찬했다가 2001년에 1억 원으로 줄었으며 다음해에는 중단되었다.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4억 원을 지원했던 포스코건설(RDS)은 2004년에는 영화제 직전에 파산함으로써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네이버 운영사인 NHN이 2005년 2억 원, 2006년과 2007년 각각 5억 원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제일모직 빈폴에서 10억 원을 협찬했다.

이렇게 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예산은 해마다 늘어 1회 22억 원에서 12회 80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인과 후원자들의 성원이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부산영화제의 예산은 세계유수 영화제에 비해서 한참 뒤처진다. 부산영화제가 안정기조 위에서 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부보조의 대폭적인 증액과 함께 기금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제신문(200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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