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4 칼럼니스트 2008년 8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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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6)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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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영화제가 성공하면서 부산에 왔던 외국 영화인과 언론인들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부산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해외영화제에 참가하는 횟수는 정비례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첫해에는 주로 부산을 찾았던 해외영화제 집행위원장들로부터 초대받기 시작했고, 대부분 심사위원 자격이었다. 제일 먼저 그해 11월에 열리는 하와이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집행위원장인 지 펄슨 여사와는 1990년 뉴델리에서 만난 이후 친하게 지낸 사이. 그녀는 부산에 왔다 귀국하자마자 귀빈자격의 초청장을 보내면서 사토 다다오 선생과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원로 영화평론가인 사토 선생은 임권택 감독과 친했고 후쿠오카시가 주관하는 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나하고도 친한 사이였는데 추석 직전에 열렸던 부산영화제가 후쿠오카영화제와 개· 폐막일이 겹쳐 매우 섭섭해 하고 있던 때였다. 다행히 하와이에서 사토 다다오 씨 부부를 만나 오해를 풀 수 있었고, 그 후 매년 부산과 후쿠오카를 오가며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됐다.

1997년 8월 9일, 지 펄슨 여사는 가족과 친지 50명을 초청, 집 앞의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날 저녁 해변에 마련된 무대에서 남편이 연출하고 그녀가 제작한 '파인 댄싱'을 초연한 후 댄스 파티로 이어진 환상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그해 11월 나는 하와이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다음해 그녀는 영화제를 떠나 현재 남가주대학교(USC)의 미디어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번째 초청장은 로테르담으로부터 날아들었다. 1998년 제26회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였다. 국내 영화제의 심사조차 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수락했다. 나는 즉시 교보문고로 달려가 회의진행에 관한 영문서적을 구입, 영어숙어들을 메모하면서 익혔다. 경험 있는 감독에게 자문도 받았다.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사이먼 필드와 나는 막역한 '술친구'였다. 지금도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대만의 세계적인 거장감독 허우 샤오시엔, 네덜란드 언론인 피터 반 뷰렌 그리고 사이먼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은 부산과 해외에서 1년에 몇 차례 만나 밤새 술 마시는 '타이거 클럽' 멤버다.

1993년 12월, 영국현대예술원(ICA) 영화책임자였던 사이먼 필드는 한국영화회고전을 준비하기 위해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에 왔다. 귀국 전날 그를 조찬과 석찬에 초대했고, 특히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시면서 친해졌다. 1995년부터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그는 프로젝트 마켓인 '시네 마트'를 창설하는 등 로테르담영화제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영화제 준비 차 칸영화제에 갔을 때 그는 많은 조언을 해 주었고, 부산에 못 온 대신 1998년 1월, 나를 로테르담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초대한 것이다.

벨기에 출신 프랑스 여자감독 샹탈 에커먼, 미국의 영화평론가 파비아노 카노사, 튀니지 여자감독 무피다 트라틀리, 네덜란드 여배우 아리안 슐리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이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은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대상인 타이거 어워드를 받았다. 그 이후 사이먼은 매년 부산을 찾았고,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 마트'와 이를 모델로 창설한 부산영화제의 PPP가 프로젝트를 교환하는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

그 이후에도 필립 치어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싱가포르영화제(4월)와 마에다 부부가 운영하는 또 다른 후쿠오카영화제(7월) 그리고 하와이영화제에 각각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았다. 다음해 1월에는 말티 사하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인도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다녀왔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마친 이후 1년 동안 로테르담, 싱가포르, 후쿠오카, 하와이, 뉴델리는 심사위원으로, 트리반드럼(인도), 칸, 후쿠오카(9월)는 게스트로 해외영화제를 찾게 되었다.

전생에 역마살이 끼었던 탓일까, 해가 갈수록 해외영화제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올 한 해만 해도 1~2월에 로테르담영화제와 파리의 칸영화제 사무국, 베를린영화제와 마드리드의 현대미술 페어(ARCO)를 찾았다. 3월에 멕시코의 과달라하라영화제, 4월에 뉴욕의 배우 박중훈 회고전과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5월에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와 칸영화제, 6월에 스페인 그라나다의 남부영화제와 상하이영화제 그리고 특히 7월에는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와 아르메니아의 예레반, 태국의 방콕, 인도 씨네판 등 4개 영화제를 순방했다.

또 8월에는 스위스 로카르노, 영국 에딘버러 및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 9월에는 삿포로국제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그리고 영화제가 끝난 후에는 바로 로마영화제에 갔다 왔다.

주말인 오는 11월 3일 오사카영화제에 참석했다가 귀국한 후 당일로 호주 브리즈번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 스크린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계획이다. 11월 25일에는 후쿠오카에서 개최되는 세계문화포럼에 참석해서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12월에 이집트 카이로영화제와 모로코의 마라케쉬영화제에 참가하고 나면 올 한 해 모두 25개 영화제 또는 영화관련 국제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일수로 따지면 한 해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는 셈이다.
 
         -국제신문(20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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