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3 칼럼니스트 2008년 8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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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5)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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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개막일인 9월 13일이 밝았다. 오전 7시50분, 5000석의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에서 생방송을 끝낸 뒤 9시 총 점검회의를 열었다. 흐린 날씨가 불안했다. 어제 부산에 도착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의 블렌다 불리신은 오후에 폴이의 안내로 선상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항구도시 부산의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요트나 유람선을 구했지만 마땅치 않아 미포에서 연안부두를 왕복하는 일반여객선을 이용했다.

미관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추억에 남을 만했다. 3대 1의 경쟁을 거쳐 선발된 젊고 의욕이 넘치는 32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김포·김해공항에서 또는 각 극장에서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27개국에서 초청된 170편의 영화가 속속 도착했고, 자막 팀원들은 필름이 도착하는 대로 자막 작업에 매일 밤을 지새고 있었다. 자막은 일본의 기술팀을 초청했다. 1회 영화제가 끝난 후 우리는 문원립 감독에게 용역을 맡겨 2회 때는 우리가 개발한 자막 시스템과 일본의 시스템을 함께 사용했고 3회부터는 전부 우리 것으로 전환했다. 170편의 영화 중 한국영화는 이용관, 아시아영화는 김지석, 비아시아권 영화는 전양준 프로그래머가 전 세계를 누비면서 선정했다.

나는 지금까지 영화 선정, 심지어 개·폐막작 영화까지도 선정에 관여하지 않고 전적으로 프로그래머들에게 맡기고 있다. 심사위원 선정도 그들의 의견에 따른다. 다만 그들이 선정한 영화에 대해 배급사나 수입사, 영화심의기관과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일만 맡아왔다. 선정한 심사위원을 교섭하는 일은 대부분 내 역할에 속한다.

8월 29일부터 예매를 시작한 입장권이 개막 전날까지 4만 장을 돌파, 우리를 열광케 했다. 특히 고무적인 일은 아시아 신인감독의 영화를 보여주는 '뉴커런츠' 섹션은 물론, 단편과 다큐멘터리까지도 고루 예매되고 있는 현상이었다. 부산은행 전산 팀이 개발한 티켓 예매시스템도 이상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개막시간이 다가오면서 5000석의 좌석은 일반관객과 영화인들, 해외 게스트로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찼다.

 잠시 뿌리던 비도 멎었다. 오후 7시30분 개막식이 열리고, 조직위원장인 문정수 부산시장의 개막선언, 김영삼 대통령의 영상축하메시지, 축하공연, 주요 영화인 소개 등이 이어졌다. 드디어 개막영화 상영을 위해 스위스에서 빌려온 6층 높이의 대형 스크린이 하늘을 수놓는 불꽃과 함께 서서히 올라갈 때 만장한 관객들의 탄성과 환호가 요트경기장을 뒤덮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때의 감동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개막파티가 끝나고 밤새도록 부산 해운대의 포장마차를 순례했다. 한 곳에서는 포장마차의 비치파라솔을 바닷가에 옮겨 놓고 주요 외국 손님들을 대접했다. 80만 원의 술값이 나왔다. 나는 카드로 계산하려 했으나 포장마차의 여주인은 "포장마차에서 카드 받는 것 보았느냐"면서 거절했다. 나는 "포장마차 다니는 사람이 현금 80만 원을 갖고 다니는 것 보았느냐"고 반문하고 외상 하자고 맞섰다. 포장마차 여주인은 어디선가 카드결제용 기구를 갖고 왔다. 이 일화는 두고두고 해운대에서 회자됐다. 하루일과가 끝나면 나는 자갈치시장과 해운대의 포장마차를 고루 찾으며 부산을 찾은 국내외 영화인들과 밤을 새웠고, 아침에는 어김없이 조찬모임과 방송출연을 강행했다.

영화제 기간 중 어느 날 밤 12시, 영화제 집행위원장들과 파티에 참석한 뒤 부산호텔을 나오니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다. 나는 부산호텔 건너편 길에 신문지를 깔고 해외영화제 집행위원장들과 소주를 마셨다. 지나가던 해외 게스트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 소탈하고 진귀한 '스트리트 파티'는 새벽까지 계속됐다. 알랭 잘라두 낭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당시의 참석자들은 지금도 그때의 파티를 못 잊어 한다. 이 스트리트 파티는 남포동이 주 무대였던 3~4년간 종종 애용되기도 했다.

극장환경이 열악했던 당시, '껌'과 '고양이 사건'도 잊을 수 없는 일화 중 하나다. 개막을 앞두고 극장화면을 점검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던 문정수 시장의 바지에 껌이 달라붙어 관계직원들이 혼쭐이 났던 일도 있었고, 영화를 심사하던 독일의 에리카 그레고르 여사는 쥐에 물려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오석근 사무국장은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극장에 풀어 넣었다가 영화상영 도중에 고양이가 울어 이번엔 고양이를 잡는 소동도 일어났다.

이처럼 숱한 화제를 뿌린 첫 영화제는 주변의 많은 우려와 예상을 깨고, 1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패왕별희'를 갖고 첸카이거 감독이 중국에서 날아왔고, '마지막 황제'의 조안 첸이 부산을 찾았다. 장 위안 감독은 '동궁서궁'의 필름을 직접 들고 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밴쿠버영화제에 갔다가 중국정부의 미움을 사서 3개월을 해외에서 떠돌기도 했다.

부산에서 첫선을 보인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이후 전 세계 영화제를 순회했다. 9월 20일, 폐막식과 함께 최우수 아시아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장밍 감독의 '무산의 비구름'이 상영되고, 폐막파티가 끝난 뒤 우리들은 해가 솟아오를 때까지 해운대 해변을 거닐면서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

     -국제신문(200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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