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60 칼럼니스트 2008년 8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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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2)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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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창설하기로 약속한 후, 9월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의 고향인 장성군 종합개발계획에 자문역할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전남 나주에 위치한 동신대학교에 출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거의 동시에 시사영어사 민영빈 회장이 창업한 영어전문 케이블인 (주)마이티브이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게 되었다.

영화제의 창설 준비는 주로 서울에서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산을 찾는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주윤탁 교수(지난해 9월 별세), 김사겸 감독 등 부산지역의 많은 영화계 인사들을 만났다. 부산에 갈 때는 항공편을, 서울로 돌아올 때는 심야고속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부산~광주~서울을 오가는 강행군이 거듭되었지만 영화제 창설 작업은 별 진전이 없었다. 파라다이스 호텔의 김인학 상무와 몇 차례 회동이 있었지만 5억 원의 지원계획은 최종결재에서 백지화돼 버렸다. 계획을 다듬는 과정에서 영화제의 소요예산은 10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다시 17억 원으로 늘었다. 결과적으로는 22억 원이 소요되었지만….

영화제 개최에 관한 부산시 실무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광주비엔날레 창설을 계기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겠다는 광주시의 움직임도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국정남 국회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발족되었다는 기사가 날아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의 친지들도 극구 말렸다. 주변에서는 과연 성공하겠는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럴수록 오기가 더욱 더 달아올랐다. 남양주종합촬영소를 건설했고, 독립기념관, 예술의 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건립도 성사시켰는데, 영화제 창립을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해 12월 4일 오후, 오세민 부산시 정무부시장의 면담을 요청했다. 내가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오 부시장은 경제기획원 예산실의 국, 과장과 국회 예결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오랜 친분이 있었다. 면담 당일, 김해공항에는 마침 부산에서 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의 제작을 맡고 있던 오석근 감독이 차를 갖고 마중 나왔고 시청에서 김지석 교수와 합류해 오 부시장을 만났다.

취지 설명을 들은 오 부시장은 사전에 문정수 부산시장에게 보고했고, 부산시에서 지원하기로 했다고 전하면서 소요예산 17억 원은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오 부시장과 저녁을 함께하고, 일행과 헤어져 서울로 향하는 야고속버스에 올랐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반주로 양주 한 병 그리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소주 두 병을 마셨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후일 부산시의 지원은 3억 원에 그쳤지만, 재정문제는 일단 해결된 것으로 보고 우리는 영화제의 기본골격을 짜는 데 몰두했다. 이용관 김지석 전양준 오석근 김유경과 박기용 감독이 주축이 되어 논의를 거듭했다. 12월 16일의 모임에서는 박광수 감독을 부집행위원장으로 영입했다. 한국을 자주 찾는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도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 준비팀에 합류했다.

1996년 1월 17일, 토니 레인즈를 포함한 준비 팀은 우리 집에 모여 최종입장을 정리했다.

첫째, 영화제의 성격은 '비경쟁 영화제'로 했다. 당시 아시아권에서 정상을 달리고 있는 홍콩영화제는 1976에 창설된 비경쟁 영화제였고, 1985년에 창설된 도쿄영화제는 경쟁 영화제였다. 도쿄영화제는 화려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경쟁부문에 올릴 작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신생 영화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화려함보다는 작품성이 뛰어난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 주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경쟁 영화제를 택했다.

둘째, 아시아에 초점을 두되 신인감독과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고, 영화제작을 지원하는 데에 영화제의 목표를 두기로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의 신인작가를 대상으로 한 '뉴 커런츠 상'을 제정키로 절충안을 마련했다.

셋째, 한국영화, 특히 독립영화를 지원하고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주된 기능으로 삼았다.

넷째, 영화제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운영주체를 사단법인으로 했다.

영화제의 기본 방향을 정한 우리는 부산시와의 협의를 거쳐 2월 13일 부산시청 회의실에서 문정수 시장 주재로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렇게 정식 출범했다.

             -국제신문(20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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