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55 [칼럼니스트] 2008년 7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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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을 가치 있는 표현의 자유만 보호해야

이재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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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은 인격적 소화 불량자들이 휘젓고 다니면서 함부로 배설이나 하는 곳이 아니다. 정보와 생각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도록 사이버 공간에 널브러져 있는 배설물들을 청소해야 한다. 얼굴도 이름도 숨긴 채 뒤에서 욕이나 하는 자들이 언젠가 자정할 것이라면서 그들을 무작정 보호해서는 안 된다.”(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

“가장 중요한 민의의 통로인 인터넷상의 표현 자유를 억압하는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검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이버 모욕죄는 가장 큰 민심의 바다인 사이버 세계를 오욕하는 자와 세력들에게 오히려 징벌할 수 있는 법률이어야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민주당 최재성 대변인)

정부가 어제(23일)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과 관련해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두 정당의 대변인이 한 말이다. 비록 노선이 다른 정당의 대변인일지라도 서로의 견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도 최고위원회에서 “국민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사이버 모독죄의 신설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야당 정치인의 주장을 들어보면 정부당국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려는 것은 두고 진보적 여론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막아보려는 보수정권의 음모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두 사람은 사이버상의 비난·비방·폭력의 폐해를 외면한 채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만을 내세우면서 정부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를 두고 야당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상교 변호사는 “모욕죄는 이미 형법상 처벌 규정이 있음에도 이를 특별법으로 만들겠다는 이유는 가중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처벌 지상주의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진보성향의 신문들도 사설을 통해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제약하는 인터넷 재갈 물리기’(한겨례), ‘사이버 모욕죄는 구시대적 정치입법이다’(경향신문) 라는 등의 제목으로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이밖에 중도성향의 신문들은 ‘인터넷 명예훼손 기준 명확히 하라’(서울신문), ‘인터넷 대책, 표현의 자유 잊지 말아야’(한국일보), ‘사이버 모욕죄 신설 신중해야’(매일경제) 등의 제목으로 사이버 모욕죄 신설에 신중을 기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보수성향의 신문들은 ‘인터넷서도 욕설하든 거짓말하든 제 이름 걸고 해야’(조선일보), ‘인터넷상의 인권보호는 강화돼야’(중앙일보), ‘포털 淨化-개인정보 보호 더 엄격히 해야(동아일보), ‘사이버 폭력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연합뉴스), ‘포털 사이트, 자유에 따른 책무 다해야’(세계일보) 등의 제목아래 대체로 찬성의 뜻을 나타내는 사설을 실었다.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을 반대하는 의견은 얼핏 들으면 옳기 짝이 없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인데 이를 정부가 막겠다고 하니 지극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의도는 국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에 반하는 사이버 모욕죄는 당연히 검토를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과 관련해 각계각층에서 벌어지는 찬반논란을 지켜보면서 1950년대 중반에 있었던 ‘박인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26세의 박인수라는 청년이 해군대위를 사칭하고 댄스홀을 휩쓸면서 1년 동안 여대생을 포함한 70여명의 여성들을 농락했다가 1심에서 공무원자격사칭에 대해서만 벌금형을 받고,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선고를 받았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는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情操)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재판장 권순영 판사가 박인수에 대해 이 같은 선고를 하면서 했던 말이다. “법은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요지였다. 박인수는 결국 항소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유죄가 확정됐지만, 이 판결문은 그로부터 5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희대의 명언으로 남아 있다.

임차식 방통위 네트워크정책관은 그제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포털 게시물에 대한 규제 강화가 표현의 자유 및 알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하자 다음과 같이 자신 있게 말했다. “‘표현의 자유’의 범위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영역까지 만이다.” 그야말로 똑 부러지는 소리이다.

임차식 정책관의 발언은 50여년 전 권순영 판사의 판결문을 연상시키고 있다. 권판사가 “자신의 몸을 함부로 놀리는 여성들의 정조까지 법이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남겼듯이, 임정책관은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는 네티즌들의 권리(표현의 자유)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다”는 뜻의 말을 했다.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올바로 행해질 때 가치를 지는 것이지 함부로 쓰는 표현의 자유는 타인을 해치는 ‘독침’이나 다름없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독침을 못 쓰게 하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벌을 주겠다는 것이 바로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려는 취지이다.

기존법으로도 충분한데도 사이버 모욕죄까지 신설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인터넷 범죄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에는 명예훼손죄만 있을 뿐 모욕죄가 없다. 그래서 인터넷상의 글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형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욕설과 폭언 등의 인터넷 글은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함으로써 법 적용상의 불균형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할 필요가 있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온라인에서의 파급력과 전파력은 오프라인에서보다 엄청나게 커 사이버 모욕을 당한 뒤 회복 불능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상황을 규제하는 입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법무부 관계자의 설명을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표현의 자유는 억제돼야 마땅하다. 명색이 법치국가에서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를 그냥 두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만약 박인수 사건을 재판했던 판사에게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법은 참된 네티즌의 건전하고 올바른 표현의 자유만을 보호할 수 있다.” <08.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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