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49 [칼럼니스트] 2008년 7월 1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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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식은땀과 세월
박강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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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때, 그러니까 놀랄 때, 무서울 때, 초조할 때 난다. 몸이 허약할 때도 나는데 건강해지면 증상이 없어진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얼굴이 노랗고 식은땀 흘리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한 아이  집에 놀러 갔을 때 아주 가난한 데 놀랐다. 그 집의 사정으로 보아 끼니 떼우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 때는 많은 집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던 전쟁 직후의 1950년대라, 먹는 것이 부실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에서 동급생이나 하급생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요구는 누룽지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학군단 훈련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한 뒤 육군보병학교에 가서 석달 동안 고된 교육을 받았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어서 장교지, 매일이다시피 오리걸음과 원산폭격, 한밤중 알철모 집합, 선착순 구보에 운수 나쁘면 군화발로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등, 한 계급 위의 구대장들에게 밤낮으로 들볶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 계획된 훈련이었지만, 당시에는 가학취미에 빠진 자들인 듯한 구대장들한테 어쩔 수 없이 당한다고 여겨져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못 견디고 동료 하나는 야간 훈련중 탈영해 버렸다.

보병학교에 입교한 뒤 며칠이 되었을 때, 인접 중대의 선불맞은 호랑이처럼 날뛰는 건장한 구대장 하나의 얼굴이 째진 눈에 긴 턱이며 어쩐지 눈에 익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가슴팍 명찰을 확인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틈타 접근해서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새까만 얼굴에 눈만 반짝이는 그 중위는 대뜸 "뭐얏?“하고 위압적으로 고함쳤다. 이내 내 명찰을 보고는 깜짝 놀라 막사 뒤쪽으로 나를 황급히 끌고 갔다. 옛날의 식은땀 친구였다.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식은땀 흘리던 허약한 친구가 세월이 지나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장교들을 가르치면서 뜨거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친구의 식은땀 흘리기가 언제 그쳤는지는 모르지만, 식은땀이라면 1950년대의 궁핍했던 시절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보인다. 군복 입은 온몸이 군인정신으로 뭉쳐 있던 것처럼 보이던 그 친구는 성공적인 군인 생활을 계속해 뒷날 장군이 되었다. 식은땀 흘리던 시절의 그가 장군이 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내게 식은땀이 나던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것이 모두 군복무 시절에 있었다. 보병학교 교육을 마치고 전방부대 소대장으로 갔는데 그 부대는 얼마 뒤 서부전선의 경계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럴 때의 어느 날, 신병 한 명을 보충 받은 분대의 분대장이 신이 나서는 바로 전방 감시초소에 데려가 오리엔테이션을 하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한 20분 뒤 그들이 가 있는 전방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리고 연기가 시커멓게 피어올랐다. 지뢰 폭발이 분명했다. 내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젊은 두 병사가 어떻게 된 것 아닐까. 황급히 초소에 전화를 걸었다. 분대장의 보고로는, 신병에게 지뢰 발사 요령을 가르쳐 주면서 그만 자물쇠 푼 발사장치 레버를 눌러 버렸다는 것이고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밤에 전방 초소 나갈 때는 소총에 실탄을 장전해야 했으므로 오발 사고의 위험이 항상 있었다. 임무 마치고 와서는 내무반에 들어가기 전에 분대장의 구령에 따라 “탄창 제거. 약실 검사. 어깨위로 총. 격발.”을 복창하면서 안전 점검을 꼭 해야 했다. 그렇게 하고도 , 하루에 한 차례씩 총걸이에 있는 소총들을 하나하나 집어들어 약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소대장과 선임하사의 중요한 일과였다. 이렇게 하는데도 식은땀 나는 사고가 났다. 소대원들이 내무반에 열 맞춰 앉아서 소총 소제를 막 시작할 때, 누군가의 총에서 “꽝”하고 총소리가 났다. 다행히 맞은 사람 없이 총알은 벽을 뚫고 나갔지만, 총구의 방향에 따라서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상할 수 있는 아찔한 사고였다. 평소 착실하던 상병 하나가 그 총의 임자였는데 얼굴이 사색이었다. 밤낮으로 그렇듯 안전을 강조해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내 식은땀 이야기는 군대와 연결돼 있다. 군대 경험은 두어 해밖에 안 되어 내 생애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적은데도 그 기억은 언제나 생생하다. 애국심, 책임감, 단결심, 안전의식, 조직규범, 확인 등을 거기에서 배우고 이것이 그 뒤 내 생활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은땀과 관련해서,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우리 국민의 살림살이가 반세기전과는 비교할 바 없이 좋아졌기에 이제 못 먹어서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없으리라는 점이다.

- 바른조달 여름호 (20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