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46 [칼럼니스트] 2008년 7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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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만도 못해서가 아니라...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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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선비가 시집가고 장가드는 시기를 놓친 것을 부끄럽게 여겨 가끔 숨기고 알리지 않는데, 어찌 숨길 일인가? 만물은 봄을 맞이하면 모두 열매를 맺는 이치가 있는데, 아! 백성 가운데 혼인하는 시기를 놓친 자들은 초목만도 못하니, 어떻게 정치를 한다고 하겠는가? 내 간절한 뜻을 본받아 실질적인 성과가 있도록 하라.”

1757년 정초 영조대왕은 결혼시기를 놓친 전국의 노처녀 노총각들을 처리하는 방안을 하교하면서 이 같은 명을 내렸다. 결혼을 인륜의 근본으로 삼는 유교이념이 지배적이던 조선왕조에서 미혼자가 발생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실정이므로 정부로서는 시급히 조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조 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조선 건국이래 늘 시행해오던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처럼 임금의 하교가 떨어지면 각 지방 감사와 수령이 나서서 미혼자를 파악하여 짝을 지어주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관이 결혼비용 일부를 마련해주었다. 또 그 때까지 자식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한 부모들은 관에 불려가 문책을 당했다.

"경찰에 불려가 시달림을 당해도 좋으니 요즘에도 그런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혼식 피로연에서 하객으로 온 한 친구가 이렇게 말을 꺼내자 "그렇게만 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다"며 여기저기서 거들었다. 결혼식장이나 여느 모임에서 자식들 결혼 얘기만 나오면 이처럼 걱정이 태산 같은 부모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나이가 30, 40이 다 되어도 도무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오죽하면 조선왕조 때처럼 나라 명령에 따라 강제로라도 결혼을 시켰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겠는가.

사회변동과 세태변화가 워낙 빨라 어지러울 지경이다. 결혼풍속도 어느 분야 못지 않게 달라지고 있다. 주례를 초빙하지 않고 신랑 신부 측근 몇 사람이 축사로 대신하는가 하면, 여성을 주례로 모시는 일도 드물지 않게 되었다. 결혼식 시작 전에 신랑은 손님을 맞이하고, 신부는 신부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양성평등에 어긋난다 하여 신부도 나와서 같이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도 낯선 일이 아니다.

먼저 입장한 신랑에게 신부 아버지가 딸을 넘겨주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역시 불공평하다 하여 신부와 신랑이 동시에 입장하는 것, 폐백실에 신랑 신부의 양가가 함께 들어가는 것도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사다.

이 정도로도 근엄한 전통보수주의자들은 못마땅할 노릇인데 결혼을 해도 아예 애는 안 낳겠다, 부엌일을 여자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니 집 구조를 바꿔 부엌을 없애거나 아니면 집 한 가운데 부엌을 두어 누구나 식사준비를 하도록 하자는 각서를 썼다는 예를 보면 기절할 것이다. 이런 일들은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너무 파격적인 것이라 언론에까지 보도돼 찬반 양론이 비등하기도 했다.

하도 이혼이 잦으니 서양처럼 미리 동거를 해보고 결혼하자는 이들도 더러 있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재혼남자가 처녀와 결혼하거나, 재혼여자가 총각과 결혼하는 것도 드물지 않아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쯤은 화제 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상의 것들은 결혼을 전제로 해서 생긴 일들이니 그렇다 치지만, 아예 결혼 자체를 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느냐는 것이 자식 가진 부모들 하소연이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한국교민들도 비슷한 실정이다. LA에서는 자식들 눈치만 보고 있을 수 없다해서 부모들이 모임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하지만 성과가 시원치 않다는 것이다. 결혼을 부모들이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느 집에 나이가 찬 아들이나 딸이 있으면 이웃과 친지들이 나서서 중매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이들조차도 없다. 그래서 부모들이 모임을 만드는 등 조바심을 치지만 한계가 있는 일이라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이런 실정이니 혹 애들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데려와 인사를 시키면 딴소리 말고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30대 중반인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려왔는데 약간 미흡해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더니 그 이후는 아예 누구를 데려오지도 않고 결혼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부부가 서로 당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몇 년째 시비 분분하다.

어떤 친구 역시 아들이 여자 애를 데려왔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거부했더니 나이 40이 다 되도록 결혼의 결 자도 못 꺼내게 하며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부인이 아들에게 잘못했다며 혹시 다른 여자 친구는 없느냐고 물으면 대답도 하지 않고 애를 태운다.

이런 사례는 극단적이니까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지만, 세태가 갈수록 결혼을 어렵게 만드는 데는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 우선 청년실업난이 심각하다. 맞벌이가 보편화된 시대에 젊은 백수가 넘쳐나니 결혼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남자만 직업이 있으면 무난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자가 직장 없는 여성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며 여성들도 가사만 돌보는 역을 원하지 않고 자기의 꿈과 자아실현을 위해 취업을 원한다. 이런 판국에 '여자가 시집이나 가지' '짚신도 짝이 있게 마련이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되기 딱 알맞다.

'초목만도 못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결혼을 바라는데 현실이 그걸 허여하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조선왕조 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청년실업난을 해소하고 육아 등 가정복지 정책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사회와 부모들 생각도 과거의 틀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결혼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결혼을 하는 것이나 하지 않는 것 모두 동등한 선택의 한 가지라는 요즘 젊은이들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과거의 틀에 맞춰 강요하면 설사 결혼이 성사되더라도 그 삶의 질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엽연초생산협동조합 회지 '엽연초'(20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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