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45 [칼럼니스트] 2008년 7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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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가 한 몸인 달팽이
김소희 (수필가, 동물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animalpark



아빠, 엄마가 서로 사랑에 빠졌기에 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세상의 대부분의 동물들도 암수가 짝을 이루어야 2세를 탄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성별’이란 것이 없는 동물도 있다. 암수가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런 동물들은 어떻게 2세를 낳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 나가는 걸까?

비가 오면 제일 신난 듯 보이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달팽이다. 아쉽게도 요즘은 쉽게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비 온 다음 날이면 집 앞 잔디밭이 ‘풀반 달팽이반’이 되곤 했다. 달팽이 근처의 풀잎을 살펴보면 끈끈한 액체가 길게 묻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달팽이가 이동하면서 남겨놓은 흔적이다. 이 끈끈한 액체가 발도 없는 녀석들을 미끄러지듯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비결이다.

달팽이는 배(발 역할을 하는)의 근육을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이동하는데, 배에서 분비되는 끈끈이 액체 덕분에 울퉁불퉁한 모래알이나 날카로운 나무껍질 위를 기어 다녀도 보드라운 몸을 다치지 않는다. 그만큼 달팽이에게 수분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건조한 곳에서는 말라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딱딱한 껍질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움직인다. 그러니 비가 오면 신날 수 밖에. 몸에 수분이 많아져 더 부드럽게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을까.

달팽이 세계에는 성별 구분이 없다. 암컷과 수컷이 따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달팽이 한 마리가 암컷이기도 하고 동시에 수컷이기도 하다. 모든 달팽이는 자기 몸 안에 난자와 정자를 만드는 기관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이런 동물을 ‘자웅동체’라고 부른다(반대로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는 동물들은 자웅이체라고 한다).

앗! 그럼 달팽이는 혼자서 암수 역할을 다 할 수 있으니 짝짓기 없이도 새끼를 낳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달팽이도 짝이 없으면 새끼를 낳을 수 없다. 달팽이 몸 안에 있는 암수 생식 기관들이 성숙하는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유전자들끼리 만나야 더 건강한 후손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짝짓기를 하는 달팽이 두 마리는 각자 자신의 정자로 상대방의 난자를 수정시킨다. 이론적으로는 짝짓기 후 달팽이는 두 마리 모두가 알을 낳을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달팽이처럼 성별 구분 없이 남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자이기도 하다면 어떨까? 생김새는 어떨지 목소리와 말투는 어떨지,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진다.   

<정보 달팽이>
우리나라에는 약 40종, 세계적으로는 약 2만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껍데기가 없는 것들을 민달팽이라고 하는데, 그 중 바나나달팽이는 생김새가 영락없이 바나나다.) 습기가 많은 때나 밤에 주로 활동하고, 이끼, 채소, 식물의 어린잎을 먹는다. 겨울에는 겨울잠을 잔다. 너무 건조할 때에는 여름잠을 자기도 한다. 주로 한국·일본·중국 등 온대와 열대 지방에 산다.
참, 짝짓기가 끝나면 달팽이는 태어날 새끼가 먹을 부드러운 풀과 습기가 많은 땅을 찾아 10센티 정도로 구멍을 판 뒤 40-50개의 하얗고 동그란 알을 낳는데, 3-4주 후가 되면 아주 작고 귀여운 새끼 달팽이들이 알을 깨고 나온다. 지렁이도 달팽이처럼 자웅동체 동물이다.

소년조선일보 200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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