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42 [칼럼니스트] 2008년 6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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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보다 더 미친 PD수첩

이재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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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메이저 신문들과 많은 네티즌들이 PD수첩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한 보도과정에서 과장·왜곡 보도한 사실 때문이다. 촛불시위 진원지인 다음사이트의 아고라에서는 ‘PD수첩 퇴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PD수첩은 이틀전(24일) 방송을 통해 두 달 가까이 온국민을 광우병 공포에 몰아놓고도 “주저앉는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말한 것은 생방송 도중에 일어난 실수였다”, “동영상에서 ‘동물을 학대하는’을 ‘광우병 의심 소를 일으켜 세우는’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 아니라 의역”이라고 사과 아닌 변명을 했다.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 PD들이 이런 정도로 후안무치하다니 눈과 귀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번 사건은 이른바 ‘PD저널리즘’이 얼마나 어설프고 위험한 것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취재 및 보도에 관한한 기초도 닦지 않은 PD들이 심층취재랍시고 마구잡이식 취재를 한 뒤 무책임한 보도를 하는 행태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서 PD저널리즘이란 무엇이며,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PD저널리즘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없는 저널리즘이다. 다시 말해 그런 말조차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울러 PD저널리즘은 태생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사생아’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이 사생아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정책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원죄’를 안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 정부는 방송사에 정권 홍보를 위한 장시간의 ‘보토특집’ 제작을 자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1분30초 안팎의 뉴스 제작에 익숙한 기자들은 긴 분량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경험이 적은데다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뉴스보도에 치중하는 기자들이 그런 일을 맡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정권의 시녀나 다름없던 방송사는 청와대의 요구와 구미에 맞추기 위해 이에 따라 시간에 쫓기는 기자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심층취재에 더 유리한 PD들이 취재보도하도록 조치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PD저널리즘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케이스가 1983년 처음 등장한 ‘추적 60분’이다.

기자가 아닌 PD가 취재하고 보도하는 ‘추적 60분’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비리 고발과 폭로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방송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취재보도를 했으니 내용도 매우 충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미끼였을 뿐, 필요할 때마다 군사정권을 미화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서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저널리즘'과 'PD저널리즘'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은 2005년 12월 당시 황우석사태가 벌어졌을 때 썼던 내용의 상당부분을 옮긴 것임을 밝혀둔다.

▲'기자저널리즘'은 적자(嫡子)이고, 'PD저널리즘'은 사생아이다.
기자저널리즘은 출생의 근본이 분명하고, PD저널리즘은 그 근본이 모호하다. 군사정권의 언론정책에 따라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언론학자들읜 이에 '원죄'가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 정부가 정권 홍보를 위해 방송사에 강요해서 만들게 한 것이 바로 PD들이 취재와 연출을 병행하는 PD저널리즘의 탄생배경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PD저널리즘이 비정상적으로 생겨났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탄생과정이나 배경이 떳떳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PD저널리즘이 '사생아'라고 보는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 사생아가 덩치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엄청난 '사고'를 친 것이다.

▲기자저널리즘은 취재전문가들의 일이고, PD저널리즘은 비전문가들의 일이다.
기자는 보통 6개월 이상의 가혹한 수습기간을 거친다. 군대에서의 신병훈련도 이 보다 더 혹독할 수는 없을 정도이다. 수습기간에 배우는 것은 취재방법과 기사작성법 등이다. 취재윤리를 익히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다.

이와는 달리 PD는 취재와 관련한 훈련을 따로 받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직책은 '연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취재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셈이다. 그래서 진실보도가 얼마나 어렵고, 오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른다. 제대로 '기자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사항들은 머리 속에 각인시켜 놓았을 것이다.

PD들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떤 사안을 취재할 때는 매우 저돌적이다. 이 점에서는 기자들보다 더하다. 아마도 취재가 본업인 기자들을 의식해서가 아닌가싶다. 여기에서 공갈, 협박, 위협 등의 수법을 동원하는 등 범죄나 다름없는 비윤리적 행태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PD는 취재와 관련해서는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기자저널리즘은 국제적인 것이고, PD저널리즘은 한국적인 것이다.
저널리즘은 원래 서구에서 먼저 생겨나서 발달해온 것이다. 기자들이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 즉 우리들이 말하는 기자저널리즘이다. PD들이 취재·보도하는 PD저널리즘은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독특한 저널리즘이다. 'PD=연출'이라는 등식을 깨고 'PD=연출 및 보도'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참고로 외국의 예를 들어보자. 영국 BBC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파노라마'는 기자와 PD가 함께 제작하고 있다. 취재와 보도는 기자가 한다. PD는 연출과 제작을 책임질 뿐이다. 미국 CBS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60 Minutes'와 '48 Hours', ABC의 'Nightline' 등도 PD가 전체 제작을 총괄하지만 개별 취재는 기자들이 맡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간판 프로그램 '벨트 슈피겔'도 마찬가지이다.

일본도 이들 서구 국가와 비슷한 체제이다. 우리나라처럼 'PD저널리즘'이라는 현상은 없다. 취재는 어디까지나 기자의 영역이고, 편집은 PD의 영역이다. 기자는 사실확인 작업을 충실히 하면 되고, PD는 영상과 편집에 전념하면 된다. NHK의 경우 처음부터 기자직과 PD직을 구분해서 뽑아 각기 본연의 업무를 맡게 하므로 'PD저널리즘'이 생길 이유가 없다.

▲기자저널리즘은 취재를 통해 결과를 얻고, PD저널리즘은 결과를 정해놓고 취재한다.
기자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의문이 가거나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취재계획을 세운 뒤 취재에 나선다. 취재를 하다보면 더 큰 '진실'을 캐낼 때가 있지만, 당초의 목적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취재과정에서 당초 예측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거기에서 취재활동을 종료한다. 이것이 기자저널리즘의 바른 길이다.

그러나 PD는 처음부터 어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맞추기 위한 취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목적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갖은 방법을 쓴다. 이번의 경우 공갈, 협박, 위협, 거짓말 등 '조폭'들이나 즐겨 쓰는 행태를 취했다. PD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해서 진실(?)을 캐내는 것이 PD저널리즘의 정도(正道)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동안 PD저널리즘은 정치적 편향성, 2분법적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이 같은 지적을 받을 때면 경청하거나 승복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걸핏하면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고 PD는 진실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얼른 듣기에는 정말 멋지고, 그럴듯하다. PD들이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때 이런 말을 하지만, 궁지에 몰릴 때도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다. 그러나 '사실보도'와 달리 '진실보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고 하는 '건방진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진실보도야 말로 투철한 언론관이 뒷받침될 때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PD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PD수첩팀은 기자들이 왜 참신성과 창의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객관성과 공정성에 매달리는 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제에 MBC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PD저널리즘을 포기할 것을 제의한다. 대신 PD들이 소홀히 했던 자연·휴먼·역사 다큐멘터리 등을 활성화시켜주길 바란다.” 2년 6개월 전인 2005년 12월 초 한 경제지의 '기자수첩'에 실린 내용이다. 그런데도 마치 어제오늘 쓴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노라면 PD저널리즘이야말로 미친 소보다 더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광우병 쇠고기를 먹으면 사람이 죽게 되겠지만, 미쳐 날뛰는 PD저널리즘에 휘둘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지난 두 달 동안 우리는 너무나 똑똑히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망할 놈의 PD수첩-. 미쳐도 오라지게 미쳤구나!”

-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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