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39 [칼럼니스트] 2008년 6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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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가 사람을 돕는다?
김소희 (수필가, 동물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animalpark



때 이른 찜통더위. 더운 날씨에는 ‘공포영화보기’만한 피서법이 없다. 우리나라의 꼬리 아홉달린 여우 구미호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흡혈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피를 빨아먹어야 산다는 것. ‘으으으.’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동물 세계에도 사람이나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녀석들이 있다. 흡혈박쥐, 흡혈 거머리, 흡혈메기부터 흡혈 침파리, 모기, 벼룩, 노린재 등의 곤충류 및 우리 몸 속에 사는 각종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흡혈 동물은 무려 4만종이 넘는다. 모조리 쓸어 모아 영원히 지구를 떠나버리게 하고픈 마음일 테지만 한 녀석만큼은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거머리. 그야말로 ‘거머리’처럼 찰싹 붙어서 배불리 피를 빨아 먹은 후, 통통하게 살이 오른 거머리의 모습은 정말 비호감이다. 달라붙은 지 30분 내에 자기 몸무게의 10배에 해당하는 피를 빨아 먹을 수 있다. 그야말로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먹는다. 이런 녀석이 어떻게 사람을 구한다는 것일까?
 
상처가 나서 피가 난다고 생각해 보자. 상처가 크지 않다면 곧 피가 굳어 딱지가 앉는 것을 볼 수 있다. 덕분에 피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못한다(만약, 피가 굳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아주 작은 상처에도 과다출혈로 죽을 수 있다). 우리에겐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흡혈동물에게는 아주 슬픈(?) 현실이다. 아무리 새로운 상처를 내봐야 좀 먹을 만하면 굳어버리길 반복하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멸종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는 모양이다. 흡혈동물은 피가 빨리 흘러나오도록 자극하는 동시에 피가 굳지 못하게 막는 화학 물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흡혈거머리는 히루딘(hirudin)이라는 물질을 분비해서 혈액이 굳는 것을 막는다. 그래야 계속해서 피를 쪽쪽 빨아먹을 수 있으니까. 거머리를 발견하고 떼어낸 후에도 3-4시간 동안 피가 멈추지 않는 것도, 그래서 실제보다 상처가 훨씬 더 심각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로 이 히루딘이라는 ‘천연 혈액 응고 방지제’가 의학에 이용된다. 끔찍하지만 사고로 손가락이 잘려 접합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몸은 출혈을 멈추기 위해 피를 굳게 하는데,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버리면 그 부위가 썩어 들어간다. 이때 수술 부위에 거머리를 붙여두면 혈액 응고를 막을 수 있고 덕분에 무사히 접합 수술에 성공할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예 이런 의료용 거머리를 '의료장치'로 승인했다. 크고 작은 외과수술을 돕는 것은 물론 피부 이식 환자의 이식 피부 아래 고인 혈액을 빨아 먹어 회복을 돕는다고 한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드름 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는데 거머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마취 성분 때문에 통증도 거의 없다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 치료 마니아들까지 생기고 있다. 마냥 끔찍하게만 생각됐던 거머리, 이제 좀 다르게 보이지 않는지?

정보
대부분 강, 호수 연못 등 민물에 살지만 바다나 습기가 많은 육지에 사는 녀석들도 있다. 전세계에 분포하고 약 500여종이 있다. 그 중 약 75%가 피를 빨아먹고 살고 나머지는 달팽이류를 잡아먹고 산다. 암수가 한 몸에 있는 자웅동체이며 알을 낳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독에 쏘이거나 물렸을 때 부어오른 상처에서 피를 뽑아내는 데 거머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소년조선일보 200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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