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38 [칼럼니스트] 2008년 6월 1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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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촉도' 길목의 소수민족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물빛이 영롱한 중국 지우자이거우(九寨溝)는 쓰촨성(四川省)의 성도 청두(成都)에서 460㎞ 떨어진 오지다. 경부고속도로(417㎞)보다 고작 43㎞ 먼 거리인데 버스로 왕복 24시간 걸린 멀고 험한 길이다.
여행이란 힘든 만큼 체험의 부피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오가는 길목에서 만난 이색적인 풍광이 지루함을 덜어준다. 2300년 전에 수리시설을 만들었다는 세계문화유산 두우장옌(都江堰)을 벗어나자 민산산맥(岷山山脈)에서 발원한 민강(岷江) 줄기를 따라 석회협곡이 이어지면서 버스가 곡예운전을 시작한다.

그 길은 산악지대로 중국대륙에서도 험준하기로 이름난 고촉도(古蜀道·촉나라의 청두와 위나라의 시안을 잇던 산악루트)가 아닌가. '촉으로 가는 길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힘들구나(蜀道難難於上靑天)'했던 이백의 시가 실감나는 길이다.
민강은 600㎞의 물길 여정을 마치고 양쯔강(陽子江)으로 흘러든다.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마다 장족(藏族·티베트족), 후이족(回族), 창족(羌族) 등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여행의 재미가 쏠쏠하다.   

머리에 흰 모자를 쓴 후이족을 만났고, 흙벽돌로 지은 창족의 주택도 보았다. 티베트족의 오체투지 삼보일배는 안일한 일상의 자극제다. 아바장족자치구 아바현에서 천장공로를 거쳐 티베트 수도 라싸(拉薩)까지 2년이 걸린다는 고행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고 차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인다.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협곡 절벽에 까치집처럼 둥지를 틀고 사는 고산족도 띄엄띄엄 보인다. 실낱처럼 이어진 길뿐인 불모의 땅에서 뭘 먹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직도 풀지 못한 화두로 남았다.

유목민족이었던 창족은 이민족의 침입이 잦자 2000여 년 전 쓰촨성 변방에 둥지를 틀고 마을을 요새화 시켰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민강 줄기 곳곳에 소형 수력발전소를 설치하여 농산품을 가공하며 평화롭게 산다.   
오가며 식사를 했던 소도시 원촨(汶川)현은 창족의 자치구로 중국을 강타한 대지진의 진원지다. 아직도 눈에 선한 청두와 지우자이거우를 잇는 그 길목이 폐허로 변했다. 해발 1970m '구름 위의 고도(古都)'로 불리는 뤄보자이 마을 흙벽돌 가옥은 송두리째 사라졌다고 한다. 순박한 모습으로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던 젊은 친구들은 무사한지 그들의 안부도 궁금하다.

쓰촨성 일대를 휩쓴 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지구촌 가족들의 사랑의 손길이다.
-2008.6.14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