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32 [칼럼니스트] 2008년 5월 2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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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뀌는 뱀_소노란 산호뱀
김소희 (수필가, 동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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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복도로 뛰쳐나온 주인공 초원이가 참았던 방귀를 ‘빠악’ 뀌는 순간,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던 옆집 아저씨가 그 소리에 놀란 나머지 꽁초를 떨어뜨리고 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초원이는 ‘방귀는 밖에서!’ 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 장면을 보면 방귀 소리가 무기(?)가 될 법도 한 것 같다.

방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독한 냄새지만, 실제로 ‘으힉, 저 사람 방귀 뀌었어.’ 알게 되는 가장 빠른 신호는 소리다. 먼저 ‘뿌웅’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그 냄새의 질에 따라 주변의 반응도 달라진다. 참을만한가 하면 코를 부여잡거나 서둘러 도망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스컹크가 방귀냄새를 무기로 삼는다면 소노란 산호뱀(Sonoran coral snake)은 방귀소리를 무기로 삼는다.

열대 아메리카에 사는 이 뱀은 적을 만나면 총배설강(동물의 소화기관 및 생식기관이 합쳐진 끝부분) 안으로 공기를 빨아들인 후 힘을 모았다가 밖으로 밀어낸다. 쉽게 말해 방귀를 뀌는 것. 카리스마 넘치는 뱀이 방귀를 뀌다니. 게다가 멋있게 한 방에 ‘뿡’도 아니고 “찌직-찌직” 부글부글 속이 굉장히 안 좋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

0.2초도 안 되는 짧은 방귀 소리는 몇 번 씩 되풀이되기도 하는데, 2미터 밖에서까지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소리가 꽤나 크다. 옆에 있는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기 십상일 만큼 사람의 방귀 소리와 거의 똑같지만, 사람과는 달리 적에게 위협받았을 경우에만 뀐다. 같은 지역에 사는 서부 매부리코 뱀(western hook-nosed snake)도 똑같이 방귀 소리로 적을 위협한다.

사실, 소노란 산호뱀은 코브라과에 속하는 무서운 독을 가진 뱀이다. 그러면서 왜 굳이 이런 방귀 소리를 내게 됐을까? 적이 나타나면 그냥 물어버리면 될 텐데. 어떤 학자는 적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쪽(얼굴과는 정반대쪽)에 가 있으면 공격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리나는 똥꼬 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 독니로 공격하겠다는 시나리오!

방귀소리로 적을 위협한다니 우습기도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고의로 방귀를 뀌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세상 살기가 좀 더 편안해질 지 모른다. 핏대 세워가며 싸울 필요 없이 방귀 한 방, 나쁜 놈이 접근한다 싶으면 방귀 한 방, 매너없는 사람을 만나도 방귀 한 방. 냄새까지 풍기기는 좀 창피할 때 적절한 방법 아닐까?

(정보)
열대 아메리카에 사는 작은 독사. 산호뱀은 약 60여종이 있는데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 산다. 그 중 소노란 산호뱀은 몸길이 33-53 cm 정도의 작고 날씬한 뱀이다. 빨강, 검정, 하양, 노랑의 밴드 무늬가 화려하다. 도마뱀, 다른 작은 뱀을 먹고 산다. 코브라와 맞먹는 독은 신경 계통에 작용해 몸을 마비시킨다. 일단 물리면 사망 확률이 매우 높지만, 산호뱀은 굴 속에서 숨어사는 데다 괴롭히기 전에는 좀처럼 무는 법이 없다고.

[소년조선일보 2008.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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