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21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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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참맛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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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어느 시각장애인과 한밤의 포장마차에 들른 적이 있다. 그는 지하철 객실을 오가며 승객들 적선에 의지해 사는데 그날 막차에서 같이 내렸다. 그에게는 하루 일과 끝인 이른바 퇴근길이었다. 집의 방향이 같아 함께 가다 소주나 한 잔 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 중에 다른 시각장애인이 화제에 올랐다. 우리 집사람한테 전해들은 그 시각장애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 성당을 순회하며 비장애인인 일반신자들에게 보람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제시했다.

그런 그도 딱 한가지 아쉬움과 소망이 있다고 했다. 사랑하는 자기 아이들 얼굴을 단 한 순간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살아 생전에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저승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비장애인들로서는 너무 사소한 그의 꿈에 장내는 눈물 바다가 되었다.

"나도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에 비하면 좀 더 행복한 편이네요" 그는 나면서부터 보지 못한 게 아니라 6,7살 무렵 시력을 잃었다. 그 역시 아이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 설명에 따라 나름대로 윤곽을 잡는다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제대로 볼 수 있던 예전의 사물에 대한 인상과 기억을 바탕으로 상상과 짐작을 조합한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 아니냐며 씩 웃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대신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당시 나는 참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에 상사의 눈밖에 나서 진급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불이익을 감당해야 했다. 이후 상당히 복구는 되었지만 그 여파가 길어 생활 구석구석이 우울하게 젖어 있었다.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말로는 나를 동정하지만 속으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일부 선후배 동료들의 눈치였다. 그걸 감당하는 데 날마다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되니 가정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월급쟁이가 직장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이나 능력, 경제력 등을 고려할 때 엄두가 나지 않고, 과감하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내 성격 또한 주요 원인이었다. 어느 회사나 이런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교활하고 악랄하게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상사가 있는 법인데 내 경우도 그랬다.

그 시각장애인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도중에 자연히 그들의 행복과 내 불행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심정과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한 고마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청각과 시각을 잃고 말하는 기능마저 마비된 헬렌 켈러는 그녀의 글 '3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에서 "나는 종종 모든 사람들이 이제 막 성인으로서 살아가려 할 때, 단 며칠 동안만 눈이나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면 하나의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암흑은 그로 하여금 볼 수 있다는 것을 더욱 감사하게끔 만들어 줄 것이고, 정적은 들을 수 있는 기쁨을 가르쳐 줄 것이다."라고 했다.

직장내 어려움만을 전부로 생각하며 헬렌 켈러의 말은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그날 밤에야 다시 떠올린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이고 명문이라는 그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내일이면 눈이 멀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하도록 하라. 내일이면 귀가 멀지도 모른다는 듯이 음악을 감상하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를 음미하도록 하라. 내일이면 촉각이 없어져 버릴 듯이 조심스럽게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라. 내일이면 이제 다시는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꽃들의 향기를 맡아보고 온갖 음식의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맛보도록 하라." 그렇게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면 자연이 제공한 이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기쁨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끝을 맺었다.

지금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무 무미건조해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고, 초라하다고까지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불투명한 미래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밑도 끝도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날 밤 이전의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 내가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다. 그건 성인이나 도달할 경지이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그때뿐이기 쉽다. 그러나 헬렌 켈러의 말처럼 모든 감각을 최대한 이용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맛보려고 틈틈이 노력은 한다.

최소한 그걸 곱씹고 노력하는 동안만은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그러려면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하겠지만 이미 주어진 감각들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진정으로 감사할 줄은 모른다.

감사할 줄만 안다면 일상이 지루하거나 무의미할 이유가 없다. 즉 인생의 참 맛을 음미하고 즐길 방법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혹시 나를 종교인으로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건 아니다. 약간 떨어져서 내 삶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비교적 자주 하는 편일 뿐이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서 몰두하다 보면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그럴 때 바둑판 앞에서 일어나 내려다보거나, 자리를 잠시 떠났다 와서 보면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자기의 우세한 부분과 취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일상이 너무 가누기 힘들고 어려울 때 잠시 비껴 서서 보라. 그리고 헬렌 켈러 말대로 이미 내게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 아름다움과 기쁨, 인생의 활력소를 재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얼마 뒤 출근길 지하철에서 승객들 적선을 바라며 카세트 음악을 틀고 지나가는 그 시각장애인을 다시 만났다. 나는 그가 말했던 '좀 더 행복한 편'을 생각하며 미소를 보냈다. 물론 그가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리고 약간 비껴 서서 다른 시각으로 내 일상을 보는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2008. 4월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