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18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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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내음에 취하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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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醉)하다'의 醉는 酉(유)와 卒(졸)을 합한 것이다. 酉는 '닭 유'라 해서 닭을 뜻한다. 그래서 乙酉(을유), 辛酉(신유)처럼  酉가 들어간 해를 닭의 해라  한다. 시간상으로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를 酉시라 했다.

그러나 본래는 술 담는 용기를 본 따 만든 글자다. 酉를 글자 아닌 그림으로 생각하고 들여다 보라. 술 동이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이 때문에 한자에서 술이나 '취하다'의 뜻을 지닌 글자에는 대부분 酉가 들어간다. 酒(술 주)는 水(물 수.삼수변)와 酉가 합쳐진 글자이다. 술 동이에 든 액체가 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한자 깨나 아는 술꾼들이 해 질 무렵인 酉시를 '술'시라며 반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卒은 끝을 뜻한다. 따라서 醉는 '술을 끝까지 마신다'라는 말이다. 술을 끝까지 마시면 취하지 않고 배겨낼 장사 없다..

영어에서는 '취하다'를 보통 get drunk라 하지만 일반적 의미로는 intoxicate를 쓴다. 가운데 -tox-가 poison(독)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마약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보다는 술에 취하는 것이 더 운치 있을 것 같다.

적당히 취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날마다 발 딛고 있는 이 고단한 삶의 수렁을 잠깐 벗어나는 그 기분 말이다. 이른바 자기를 잊는 몰아의 경지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거나, 자기도 몰랐던 열정과 감성을 감지할 것이다. 그때 발산되는 에너지가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은 물론 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까지 의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분출하기도 한다.

가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면서도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을 술자리에서 만나면 오가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술도 못하는 사람의 글이나 음악, 미술에 무슨 감동이 있고, 무슨 진실이 있겠느냐"면서 농담을 하는데 어찌 생각하면 그게 전혀 농담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취하다'라는 말은 이처럼 술과 관련이 있지만 '심취하다' '도취하다'라 등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술은 아니지만 술만큼 강렬한 마력을 지닌 것에 취했다는 뜻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 모차르트에 심취했다' '우리는 그날 승리감에 도취했다' 하면 술 대신 음악과 승리에 취한 것이다.

봄에 취하는 것도 그렇다. 봄만이 가진 마력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같은 음악, 같은 그림을 대해도 취하는 계기와 매력의 핵심이 다르듯 봄도 사람에 따라 취흥을 돋구는 부분이 다 다르다.

나는 군복무 시절 보초를 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진달래의 붉은 색에 지독하게 취한 적이 있었다. 최전방이라서 남북의 산이 다 시야에 들어오는데 북상하는 봄과 진달래는 남북 구별 없이 산과 들에 지천으로 번졌다. 거기에서 총부리를 서로 겨누어야 하는 상황이 나로 하여금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것이다.  

진달래가 산에 아무리  만발해도 웬만큼 가까이 가지 않아서는 잘 보이지 않는 법인데 계속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거뭇거뭇한 산그늘 속에서 분홍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산은 이만큼, 저 산은 저만큼 봄의 색채가 드러났다. 하도 강렬하게 응시하니 봄 아닌 내 눈빛 때문에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날마다 눈빛으로 진달래꽃을 피우느라 보초서는 지루함과 괴로움을 잊고 있다" 했더니 술을 못 마셔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라는 농담 투의 답장이 왔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취했다. 술이 없어도...

올해도 봄이 왔다. 취흥을 돋구는 봄의 매력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꽃 그늘 진 한가한 골목길, 보리밭을 스쳐오는 바람 물결, 섬과 섬 사이를 돌아서 바다를 건너오는 봄 내음 등이 사람을 취하게 한다. 이럴 때는 감때사나운 개들도 만취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한밤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 해질 무렵 바닷가 외딴 집 마루에 찾아든 나른한 햇살, 먼 산아래 봄 오는 마을, 개나리 밑의 암탉과 병아리들 등도 우리를 한없이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봄을 맛보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이 되었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돼 이미 없어져 버렸거나, 있더라도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봄은 머물러 있다.

먹거리에 자연산은 드물고 양식이 판치는 것처럼, 봄도 자연산은 사라지거나 희귀해져 참된 봄을 구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백화점 광고나 TV에 나오는 봄이 먼저 인사를 하지만, 아무리 그럴 듯 해도 인위적으로 가꾸고 꾸민 봄이 취흥을 제대로 돋굴 수는 없다.

예전에는 늘 가까이 있던 봄이 이렇게 멀어졌으니 참 맛을 보려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불해서 먼 곳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매우 아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바른조달 봄호(2008)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