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17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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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사람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언젠가 버스 안에서 어떤 여성을 보고 멋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허리만 덮을 정도의 짧은 길이의 밍크 쟈켓를 입고 딱 붙는 바지를 입고 긴 부츠를 신고 있었다. 머리는 웨이브가 있는 악간 긴 단발로 소녀처럼 옆머리를 뒤로 보내 핀인가를 꽂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겉만 보고 멋있다고 느낀 것이다. 한 번 말을 붙였다가 십리 밖으로 달아났을 지도 모른다. 사춘기 때 이상한 차림을 하면 ‘겉멋은 들어서…….’ 하고 부모가 혀를 찬다. 그러나 정말 멋있는 사람은 단지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은근한 느낌이 지속된다. 또 알면 알수록 멋을 느끼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겉멋이 들었던 십대는 세월이 지나면서 성숙해지고 정말 멋이 있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하는 말 ‘어머 너 정말 멋있어졌다 얘!’

내가 버스 안에서 본 여성을 멋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아마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 스타일을 표현한 데 있었을 것이다. 돈 있는 사모님이 주로 입는 무겁고 긴 밍크코트가 아니었고 머리도 아줌마파마가 아니었으며 기사가 모는 벤츠 안에 앉아있지도 않았다.

요즘은 멋있는 대상에 대해 붙이는 말 중에 카리스마(charisma)라는 단어가 있다. 영화배우 조니 뎁과 마릴린 몬로가 이 대열에 오르고 정치가 중에는 윈스턴 처칠, 나폴레옹 등등도 거론된다. 한국에서는 눈빛이 강렬하거나 압도하는 듯한 연기를 하는 연예인을 묘사할 때 주로 이 표현이 등장하는데 거기다 작렬까지 하여 카리스마 작렬! 이라고 나온다.

영어권에서는 이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을 주위에서 본다. 사람들은 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이 카리스마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에 대해 연구도 한다. 왜 그 매력에 끌려들어가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닮고 싶어 한다.

그 사람이 파티 장에 들어오면 일단 방이 환해지면서 모든 사람이 그에게 끌리고 압도당한다. 사람들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무언가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고 집중하는 영역이 있으며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등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에 비해 멋있는 것은 은근하다. 작렬하지는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두고두고 쳐다보고 보면 볼수록 좋다. 멋있는 사람을 들자면 이순신 장군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장군이라면 훌륭하다 존경한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는 전쟁터에서도 밤에 달을 쳐다보며 달빛에 취해 시를 쓸 수 있는 감수성을 지녔기에 멋있다.  글로써 내면을 드러내는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멋있는 사람, 멋있는 장군이다.

그가 카리스마까지 있었는지는 실제로 만나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마 있었을 것이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여러 힘든 과정을 거쳐 자신의 지위에 도달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만약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이를 막아낼 것 같은 자신감을 보여준다. 위기가 오면 이를 피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막고 책임을 질 것 같고 주위를 압도한다. 지도력과 설득력이 있어 주위에 사람이 모여든다.

그런데 이런 타고난 스타성 재능이나 위인의 카리스마도, 시적인 감수성도 가지지 못한 채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한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안타깝게도 주위에 멋없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을 열거하기가 더 쉽다면? 오래전 누가 직장 상사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머리 좋음과 부지런함 두 가지 변수로 정리하여 말을 해주어 함께 낄낄거리며 웃은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일 곤란한 상사가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상사였다.  머리 나쁘면서 부지런하면 이것저것 엉뚱한 것 직원에게 시키며 남의 창조적 에너지를 쓸데없는 일에 소모시킨다.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주위사람을 끌어당겨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눈에 안 띠게 도망가려하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현상을 발생시킨다. 그러면 일도 시킨 것을 하는 척 할 뿐 마음을 쏟아 붓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카리스마도 없고 은근한 멋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면 차라리 남에게 짜증나는 유형의 인물이나 안 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냥 가만히 있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자. 봄꽃을 피우기 위해 화초에 물을 주고 화사한 햇살에 취해보자.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자. 흐드러진 모란을 떠올리며 천리향의 향기에 취해 보는 상상이라도 하자. 멋있는 사람은 못되더라도 이 봄 날 멋있는 그림이라도 만들어 보자.

그러면 언젠가 멋이 있어지지 않겠는가, 쌓아온 내공의 힘으로.

- 바른조달 2008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