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16 [칼럼니스트] 2008년 3월 3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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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배우지?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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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한문을 배우러 다니는데 학습성과가 너무 더디다. 앞으로 얼마를 더 다녀야 혼자 문장을 읽어낼 수준(이른바 문리가 터진다는 것)에 이를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어 계속 '공자왈 맹자왈' 하는데 주변의 반응이 다채롭다.

가장 많은 질문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그런 쓸모 없는 한문을 배우느?'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게 돈이 되느냐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거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입을 다문다.

다음은 한자, 한문, 서예 등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설명해 봐야 소통이 되지 않는다. '본래 한문을(한자를 한문으로 아는 이들) 상당히 많이 알던데 무엇 때문에 몇 년씩이나 다니느냐' '이제는 한문(한자)학원을 내서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는 사람들한테 한문 문장 해독력을 기르러 다닌다고 말해봐야 헛일이다. 이제는 글씨가 많이 늘었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한문과 서예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퇴직 후 먼저 직장을 떠난 동료를 길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가 시간이 나면 한문서적을 읽으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이 '한문을 배우는 과정에서 현직 때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논어' '맹자' '통감' '사기' '소학' 같은 책들을 접하면서 현장감이나 생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대적으로 대략 2천5백년 이전인데다, 난삽하기 짝이 없는 한문을 통해 읽으니 마치 박물관 진열품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서당개 3년 세월'을 한참 지나니 그 시대와 오늘날의 동질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무뚝뚝하기 짝이 없던 '서경'같은 책의 내용도 조선조 5백년을 어떻게 관통했는지 어림짐작이 가면서 친근해졌다.

그렇지만 이런 정도로는 '한문을 왜 배우지?'라고 묻는 이들에게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손자병법' '오자병법' '육도삼략' 이나 '사기열전'등을 접하면서 인간의 유형, 난국을 헤쳐 나가는 방법 등을 깨닫고 현직 시절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뒤늦게 한탄한다고 하면 좀 더 이해는 하지만 번역서도 많은데 굳이 그 고생이냐고 되묻는다.

배우는 목적은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지식의 습득이다. 과학, 경제, 사회, 예술 등에서부터 자동차 운전, 컴퓨터, 공인중개업, 외국어 등 실용에 필요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익히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금은 지식의 수명이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세상이라 무엇 하나 배우고 돌아서면 금방 낡은 것이 돼 버린다. 컴퓨터를 보라. 도스시절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정신없이 진화해 왔는가. 생각만 해도 어지러울 것이다. 한시라도 배우지 않으면 곧 낙오하고 만다. 그러니 누가 배워라 말아라 하기 전에 각자 알아서들 배우게 마련이다.

두 번째는 지혜의 습득이다. 이는 얼핏 실용과는 거리가 있는 듯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걸 배우느냐'는 반응이 나오기 쉽다. 주로 문학, 역사, 철학 분야에 관한 것들이고 이른바 고전이라는 것들이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한문은 이 세 가지가 집중적으로 포함돼 있어 그런 질문공세에 시달린다.

이런 분야에도 새로운 정보가 있지만 그보다는 거기에 면면히 흐르는 지혜가 배우는 이들을 끌어당긴다. 지식은 날로 변하지만 지혜는 동서고금을 한결같이 관통하므로 살아가는데 절대 필요하다. 단지 공간과 시대에 따른 가치의 변화를 고려해서 배워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바로 그 점이 배우는 이들을 사색하게 하고 고뇌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지혜를 정의하는 이론적인 견해가 많지만 나름대로 단순화해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과 운동의 이치를 터득하고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도 능률적이다. 매사에 모르고 덤비다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사람이나 사례를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이 보고 들어서 알 것이다.

서점에 가보면 처세술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들이 대부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처세술 책은 좋아하면서 그 원조 격인 고전 등은 실용서보다 간접적이고 덜 현실적이라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배움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알아야 할 세상만사를 혼자 다 경험하고 익힐 수 없기 때문에 책, 여행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겪는 간접경험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해 인간이 안다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다. 인류 지식사에 큰 자취를 남긴 뉴턴도 자신의 업적은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 정도 될까말까 하다고 했으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자신이 한때 배워 아는 것만을 고집하며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지식을 향상시키지 않고 사고방식을 변화에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 창의력 포용력이 결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고정관념의 틀에 가두어 발전을 막고 주변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한다. 내 말만 맞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이런 이들이 상사가 되면 구성원들을 괴롭힐 뿐 만 아니라 조직의 경쟁력까지 저하시키고 종국에는 자신도 망가뜨린다. 그로 인한 개인과 조직의 여러 가지 비용 및 에너지의 비효율적 낭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려면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지 최신 지식과 정보 섭취를 위해 항시 배우고, 그것을 현장에서 잘 운용하고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고전 등을 통해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물론 배운다고 해서 다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취약점이다. 그래도 배우고 노력하는 동안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일년에 책 한 권 읽지 않고 항시 자신만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이를 잘 반증해 준다.

  -한국토지신탁 '코아루' 3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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