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15 [칼럼니스트] 2007년 3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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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소통은 없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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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비슷한 곳에서 강좌가 끝난 뒤에도 서로 만나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해서 모두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다. 그런데 상당히 고령층에 속하는 한 분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튀는 언행을 거리낌없이 자행했다. 그것도 상사가 부하 대하듯 하니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안하무인이었다.

도대체 퇴직 이전 어디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냐는 힐난까지 나오자 어느 사람이 자기 옛 직장 상사라고 밝혔다. 당연히 그이에게 직장에서도 저러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자 한 마디로 대답했다. "저 양반, 회의 하나는 좋아했지요"

긴말이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표정들이었다.

어느 회사, 어느 조직 치고 회의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회의는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여 생산성을 높이는데 절대 필요한 기능의 하나이자, 구성원들의 물적, 심적 소통을 위한 주요 통로이다.

그러나 이것을 착각, 개인의 알량한 지식을 과시하거나 일방적 지시만을 해서 부하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의 피로도만 잔뜩 올려놓는 상사들이 적지 않다. 주제는 저만치 놔두고 자기 학력이나 아는 것을 회의 때마다 드러내는 속물 상사일수록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는다. 누가 의견을 제시하면 도리어 자기 말을 가로챈다며 예절에 관해 한 늘어놓기 마련이다.
또 별로 우습지도 않거나, 한물 간 넌센스 퀴즈 같은 것을 늘어놓고 부하들의 웃음을 강요한다. 이럴 때는 그게 매우 우습다며 배꼽 잡고 뒹구는 흉내를 내는 아첨꾼이 꼭 있다. 그런 직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회의는 그렇게 필요이상의 시간을 잡아먹으며 흘러가고, 게다가 자주 열린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회사 일과 회의 때문에 항시 바쁘다며 엄살이고, 자기 아니면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처럼 과장하고 다닌다. 그런 회의 백날 춤춰 봐야 조직은 멍들고, 앞길은 험하다. 그러다 보니 회의의 본뜻은 희미해진 대신 비효율적인 것의 대명사처럼 되고 말았다.

최근 어느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응답자 6백60명 가운데 37.1%가 '팀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이끌어 내는 커뮤니케이션형 팀장'(37.1%)을 최고 팀장 유형 1순위로 꼽았다. 역시 자신들의 현 팀장 문제점으로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다'(29.4%),를 가장 많이 지적,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의사소통에 지장을 주는 상사가 많음을 입증했다. 그런 상사들이 주재하는 회의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구성원들은 그래도 봉급, 승진, 인사 등의 구속력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속물 상사들은 그것마저도 모르고 자기가 잘난 것처럼 생각하거나, '포도청'을 악용해 부하들을 괴롭힌다.

그런 이들은 퇴직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앞에서 예를 든 그 고령자처럼 구속력 없는 모임에서까지 그 버릇 버리지 못하고 착각 속에서 산다.

미국에서는 가끔 "No meeting, No phone, No boss. Now, I'm free.(회의도 없고 전화 받을 일도 없다. 상사도 없다. 이제 나는 자유다)"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차를 가끔 볼 수 있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 두었으니 이제 그 지겨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사의 말이나 전화도 듣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을 그렇게 표시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렇겠는가. 거기에 'No laugh'(상사 앞에서 억지로 웃을 일도 없다)를 추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회의는 조직의 구성원들 의견을 상하좌우로 소통시켜, 개인과 전체의 능력을 극대화시키자는 것이다. 그걸 혼자 떠드는 자리로 착각한 답답한 상사 때문에 회의는 늘 열려도 상호간에 소통은 없다.

소통은커녕 여러  입을 막고, 의견을 가두는 커뮤니케이션 수용소가 되고 만다. 그건 부하직원들의 고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질병과 상사 본인의 불행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행정공제회 '웹진, 3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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