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14 [칼럼니스트] 2008년 3월 2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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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이재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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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단축번호를 설정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1번을 누구로 할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1번은 한마디로 ‘대표번호’이기 때문에 휴대폰 주인에게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단 1번만 정하고 나면 다음은 친밀도, 중요도 등 나름대로의 순서를 정해 입력하면 되므로 한결 쉬워진다.

누구 전화를 단축번호 1번으로 하느냐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한참 열애에 빠진 젊은이들은 당연히 애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사귀는 이성의 휴대폰에 내 번호가 1번으로 오른다는 것은 애인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 된다. 반면에 1번에서 밀리거나 아예 삭제되면 애정이 식었거나 결별을 의미하게 된다.

사람들은 내 번호가 상대방 휴대폰 단축키에 몇 번으로 입력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친분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단축번호의 순서를 놓고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상대방에게 물어서 생각보다 뒤의 번호일 경우 섭섭한 느낌을 갖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김윤옥 여사라고 한다. 세상에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이 아내라는 생각에 단축번호 1번을 김여사로 택했음이 틀림없다. 그 반대로 김여사의 휴대폰 1번도 이대통령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다.

필자의 경우 단축번호 1번은 집전화이고, 2번은 내방의 다른 전화, 3번은 동기회 사무실이다. 4번에 와서야 아내가 차지하고, 5번은 딸, 6번은 아들이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1, 2, 3번은 아내, 딸, 아들의 순서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1번과 2번은 집에 있는 전화번호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3번을 고교동기회 사무실로 해놓은 것은 좀 그렇다. 필자가 동기회와 관련한 일을 돕다보니 그곳에 전화할 일이 많아서 그랬지만 3번째를 차지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2006년 3월 커뮤니티업체 다모임(damoim.net)에서 네티즌 920명을 대상으로 단축전화번호 1번이 누구인지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34%가 우리 집, 31%가 부모님, 19%가 연인, 11%가 기타, 5%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대답했다. 연인이라는 답이 집이나 부모님보다 적게 나온 것이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이보다 1년 전인 2005년 5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CE0 회원 5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응답자의 75.8%가 집(혹은 배우자)을 1번으로 설정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응답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자녀’나 ‘친한 친구’ 등은 각각 1%선에 머물러 비서나 운전기사(3.0%)보다 적었다.

단축번호를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설정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단축번호 1번은 아내도, 애들도, 서울에 계신 부모님도 아니고 경찰서 범죄신고 전화(112)라고 소개했다. 2번은 응급구조 겸 화재신고 전화(119)이고, 가족들은 필자처럼 4번, 5번, 6번이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단축번호 1번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것이 누구의 번호이냐는 것보다는 어떤 번호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처럼 아내의 휴대폰번호를 1번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블로거처럼 119를 1번으로 할 것인가.

거의 매일 만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는 단축번호 1번이 누구인가?” “당연히 마누라지. 아내한테 사랑받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 나는 4번인데. 어서 빨리 1번으로 옮겨야겠군.” “아직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는가. 서두르게 이 친구야!” 큰일이라도 난 듯 다그치는 친구의 목소리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경찰관(112)이나 소방관서(119)가 아니다. 그러므로 얼른 단축번호 1번을 아내의 휴대폰번호로 바꾸어야겠다. 그렇게 하면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를 맨 먼저 내세웠다고 기뻐할 것이고, 나는 나대로 편리하게 써먹을 수 있어서 좋지 않겠는가.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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