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11 [칼럼니스트] 2007년 3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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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인터넷에서 읽어요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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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독자의 일차적 만남은 가정이다. 예전에는 아파트 복도나 주택가 대문 근처에 잇대서 신문이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눈에 띌 정도로 드문드문 놓여있다. 근년에 발표된 어느 조사가 말했듯이 가정의 신문구독률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새벽을 가르며 다니던 배달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만큼 드물어졌다. 공동배달제가 주원인이지만 신문 보는 가구가 줄어든 것도 큰 이유이다.

지하철은 구독률 저하를 더욱 깊이 실감할 수 있다. 손님이 드물어 가판대가 거의 유명무실해졌고 차내의 가판원은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출근길은 무가지로 뒤덮이고 퇴근길도 석간 무가지가 좀 읽히는 정도이다.

신문을 들고 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어쩌다 예전처럼 다 읽은 신문을 손에 들거나 옆구리에 끼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 고령자들이다. 그걸 보면 사람이나 신문의 처지가 비슷한 듯해 약간 처량한 느낌이 든다.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도 비슷하다. 먼길을 나서면서 신문 등 읽을 거리를 가지고 가는 사람보다 이어폰 낀 이들이 더 많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뉴스 욕구가 현저하게 저하된 것일까. 물론 아니다. 뉴스에 대한 욕구는 인류가 생긴 이래 계속 존재한 사실상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전체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읽거나 본다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최근 조사 결과가 이상의 현상들을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신문경영인들이나 종사자들도 다 아는 분명할 사실을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혁명이나 변화의 한 가운데 있을수록, 그리고 관련 당사자일수록 그 변화 속도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문인들이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대처하리라 믿지만 혹시나 하는 기우에서 거론해 보는 것이다.

지난 해 워싱턴 포스트가 자기네 종이신문과 인터넷 판의 차이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고심해서 대응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미국 ABC협회 등 구독자 조사기관들도 종이신문 독자나 인터넷 판 방문자를 병합 계산해 광고료 산출에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주목할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인터넷 판 유료를 고집하던 뉴욕타임스가 무료로 바꾼 것도 변화 대응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우리 신문들은 어느 정도 가시적인 노력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고사하고 현직 신문인들 가운데는 알고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아직도 과거 신문의 영향력을 그대로 믿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늙음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노인처럼...   

독일의 매체 이론가인 노르베르트 볼츠는 "인터넷 정보는 소비위주다. 깊이 있게 세상을 읽는 힘은 앞으로도 인쇄매체 몫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하다"라며 신문, 책 등 인쇄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보화 사회의 한계를 밝혔다.

이 지적을 그르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신문인들의 깊은 고뇌와 명석한 판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대한언론 3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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