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08 [칼럼니스트] 2008년 2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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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외국인’이란 말의 풍김
박강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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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외국인’이란 말은 매우 고약하다. 외국으로 이주하여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게 된 우리 동포를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봤자 벼룩이듯 네가 그래봤자 한국 종자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이 말이 풍기는 것은 적의와 멸시다. 게다가 한민족 전체를 스스로 폄하하는 민족적 인종적 열등의식까지 묻어 있다. 이 말은 이성의 말이 아니라 감정의 말이다.

이명박 관련 의혹 사건을 수사한 정호영 특별검사단이 결과를 2월 21일(2008년) 발표할 때 문강배 특별검사보가 이 사건을 “검은머리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이 우롱당한 사건“으로 규정하였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었다.

표현이 가장 객관적이고 건조하여야 할 수사결과 발표에 검사가 ‘검은머리 외국인’ 같은 감정적인 어휘를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검은머리 외국인’에게 당하였으니 ‘노란머리 외국인’에게 당한 것보다 더 약 오르고 더 창피하고 더 한심하다는 말일까?

그리고, 대한민국이 우롱당하였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나는 미국 국적의 김 아무개한테 우롱당한 일이 결코 없다. 내 아우나 내 친구들 가운데도 그에게 우롱당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허투루 쓸 말이 아니다. 나와 내 이웃들은 한 개인에게 우롱이나 당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면, 특별검사와 그 일행이 국민과 민족을 우롱하였다.

이런 표현을 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옛날 일 하나. 12.12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국방부의 발표문(1979년 12월 24일) 중에 “이 때 전 정총장은 야릇한 욕망이 움직였는 바 여기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보면...”이라고 ‘야릇한 욕망’이란 감정적인 말이 쓰인 것이 우스웠다. 육군참모총장으로서 계엄사령관으로 있다가 부하들에게 체포된 정승화씨를 ‘정 전총장’이 아닌 ‘전 정총장’으로 여러 번 지칭하고 있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였다. 한마디로 발표문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란 감정적인 말을 절대 쓰지 말자. 같은 민족을 차별하고 이간하는 이 말은 반민족적이다. 공적인 인사와 기관은 말을 좀더 다듬고 가려 써야 한다. 감정의 언어가 아닌 이성의 언어를 써야 한다.

- 200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