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07 [칼럼니스트] 2008년 02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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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날씨가 좋은 날은 버스를 타고 바깥구경을 하며 가고 날씨가 신통치 않으면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으며 간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환해지면서 바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눈을 들어 차창 밖을 보면 정말 그런 경우는 보너스이다. 한강을 지날 때 보이는 한강물과 멀리 보이는 산자락하며 그 경관은 도시 속의 자연과 공간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일 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일 지라도 그 장면은 내 머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고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최근 런던 패션 워크가 런던에서 열려 10년 가까이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 가 돌아와 작품을 냈다고 전 영국언론이 떠들썩했다. 한 인터뷰에서 웨스트우드는 템즈강을 건너면서 자신이 집에 돌아온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의 정체성은 자신이 보던 산과 들 강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강을 지하철로 건너며 밖이 환해지면 꼭 한강을 바라 보게 된다. 저 멀리 산자락이 한강과 만나는 곳으로 시선이 옮겨가다가 하루는 시선을 가로막는 네모난 광고판을 보았다. 그 산자락이 강물과 만나는 접점에서 그 네모는 자연의 곡선을 가리며 무슨 물건을 사라며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정말 나는 어디서도 시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가 없는 것인가? 비록 짧은 순간 이나마 정말 좋다고 느끼려 할 때도 무엇인가가 나를 가로 막고 무엇이라 말하는 것 같다.  소위 들이대야 사는 삶을 모두들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지.

그 결과 이제 서울에서 북한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드물다.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하늘로 수십년 동안 들이대 북한산은 그 빌딩 사이사이로 토막토막 난 채 보인다. 도심의 상용건물 뿐 아니라 거주지역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용지역이고 거주지역이고 구분없이 산은 네모난 형체들이 가리고 있다.

며칠 전 불 탄 숭례문 앞에 다시 서서 보니 돈 많은 은행 보험회사 상공관련 기관 등의 건물이 숭례문을 삥 둘러싸고 있었다. 누군가가 먼저 숭례문 높이를 넘어서 건물을 짓기 시작했을 것이고 허가가 났을 것이고 너도 하니 나도 하고 그래서 경관 따위, 안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나도 거기서 언젠가 광화문도 바라 보고 북한산 전체를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내가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광경을 즐긴 기억이나 특별히 고맙게 여긴 기억이 별로 없다. 고층빌딩 꼭대기에 있던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음악들으며 식사하고 명동 신발 벗고 들어가던 음악실 같은 데나 관심이 있었다. 통기타 가수들에 대한 장발금지령에 분노하고 팝송을 듣고 그런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고궁에 가는 적 보다 많았다.

아마 북한산은 서울을 들러 싸고 당연히 거기에 있을 것이고 매일 지나다니던 남대문도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래서 나는 늦었지만 북한산을 길거리 어디에서나 좀 제대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안 되면 한강을 건널 때 만이라고 자연을 느끼고  북한산이나 한강 주변 산과 강을 볼 수 있도록 좀 나를 내버려둬 주었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서울은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특이하다. 그것이 다른 세계적인 도시와 다른 점이다. 그 좋아하는 말 경쟁력이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그 먹고 사는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산에 설치하는 네모난 광고판은 이제 다른 곳, 예를 들면 인터넷, 케이블, 광고수입이 줄어드는 신문업계로 가면 그 소임을 다하지 않겠는가? 좋은 경관이 밥 먹여 주냐고 하는 말도 정말 식상하다. 좋은 경관 보러 관광객들이 몰려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밥만 먹고 사냐고도 묻고도 싶다. 그러다 조상이 남겨준 대문까지 불태워 먹은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 인지도 모르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산자락이라도 제대로 보게, 광고판 없이 좀 산과 강을 부분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도 ! 숭례문 불 나 없어졌으니 북한산이라도 돌리도 !

-200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