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05 [칼럼니스트] 2008년 2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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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베이징 골목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여행은 잘 알려진 관광명소보다 재래시장이나 뒷골목을 둘러보는 것이 생생한 현장체험이자 색다른 맛이다. 자전거인력거를 타고 중국 베이징의 골목을 둘러보니 60년대 서울 달동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회색 빛 벽돌과 잡초가 자란 기와지붕, 낡은 문설주, 마당 한쪽에 가지런히 쌓아놓은 연탄, 골목 귀퉁이의 공동화장실은 외국인들에겐 구경거리지만 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낡은 대문에 붙여 놓은 ‘복(福)’자와 ‘재(財)’자가 유난히 많이 들어간 춘방(春榜)에 소박한 꿈이 담겨 있다.

음료수와 과자를 파는 구멍가게, 찜통하나 달랑 얹어 놓고 찐만두를 파는 만두가게, 허름한 세탁소, 해바라기를 하며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노인들, 긴 나무의자에 마주 앉아 장기를 두는 골목풍경이 낡은 필름처럼 스쳐간다.

가이드의 안내로 중국의 전통가옥 쓰허위안(四合院)에 들렀다. 거실에 들어서니 손 때 묻은 옛 가구와 장식구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바닥은 하얀 타일로 개조해 부조화를 느낀다. 60대 남자주인이 나와 녹차 한잔씩 권하며 집을 소개한다. 쓰허위안은 안뜰(中庭)을 향해 문과 창을 내지만, 외부로는 창을 내지 않은 채 등을 돌린 폐쇄형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각형이라는 중국인들의 오랜 관념이 반영된 ‘ㅁ자’형 가옥이다. 본 채는 집안의 어른이 거처하거나 사당으로 쓰이고, 양쪽과 맞은 켠은 가족의 서열에 따라 거주한다.

교사를 하다가 정년퇴임 했다는 그는 자식들을 분가시킨 뒤 부부가 살고 있으며 관광객들을 맞으며 노후를 보낸다. 집 값을 물었더니 ㎡당 3,500위안(455만원) 정도로 아파트 2,3채 가격이라고 하여 놀랐다. “서민 집 구경이 아니라 재벌 집에 왔다”고 가볍게 농을 던졌다.

우리말로 골목인 베이징의 후통(胡同)은 몽고어의 ‘쉐이징(水井)으로 우물을 뜻한다. 우물을 중심으로 주택이 들어서면서 골목이 형성됐다. 한(漢)나라 이후 주로 귀족과 상인들의 주택으로 쓰였으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으로 탈바꿈됐다.

지난해 4월 3,022㎡(약 916평) 규모의 쓰허위안이 1억1000만위안(약 143억원)에 팔려 베이징 주택 판매가격의 신기록을 세웠다는 중국언론의 보도가 떠오른다. 근래에 외국인 부호나 중국 상류층들은 쓰허위안을 사들여 개조하는 붐이 인다고 한다.

고가에 거래되는 쓰허위안은 공왕부(恭王府)에 위치해 있으며 청(淸)대에 왕자와 귀족들이 살던 곳으로 넓은 정원을 갖춘 저택이다. 서민들의 집단주거지역인 고루대가(鼓樓大街)와 십찰해공원(什刹海公園) 부근 쓰허위안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얼굴이다.

베이징 당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몇 년 전부터 후통과 쓰허위안을 철거하거나, 환경정비사업으로 개조하여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라니 아쉽다. 골목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공간이다. 베이징의 숨결이 살아 있는 소중한 민간문화유산인 골목과 전통주거공간 쓰허위안이 거센 변화의 바람 앞에 맥없이 사라지고 있다.

-2008. 2. 18.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