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01 [칼럼니스트] 2007년 1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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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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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왕이 모든 신하를 모으고 의논하되, '가련토다. 과인 한 몸이 죽으면 북망산 깊은 곳에 백골이 진토에 묻혀 세상의 영화며 부귀가 다 허사로구나. 이전에 여섯 나라를 통일치지하던 진시황도 삼신산에 불사약을 구하려고 동남동녀 오백인을 보냈고, 위엄이 사해에 떨치던 한무제도 백대를 높이 짓고 승로반에 신선의 손을 만들어 이슬을 받았으되 하늘 명이 떳떳치 아니하여 필경은 여산의 무덤과 무릉침을 면치 못하였거늘 하물며 나 같은 한쪽 조그마한 나라 임금이야 일러 무엇하리. ..' 하고 가로되"(판소리 '별주부전' 중에서)

"잡으시요 잡으시요 이 술 한 잔 잡으시요
이 술이 술이 아니라 한무제 승로반에 이슬 받은 것이오니
이 술 한 잔 잡으시면 천만년을 사오리다"('옹고집전' '이춘풍전' 중에서 '권주가')

불로장생, 무병장수를 얘기하자면 꼭 이처럼 진시황과 한무제 이야기가 상투어로 등장한다. 장생불로약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누구도 못 말리는 병적인 것이었다. 진시황은 자기가 거처하는 곳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사약을 구하는 절대 조건이라는 말에 따라 궁궐 안팎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 몰래 다녔으며, 어디서건 그의 위치를 발설하는 사람은 바로 사형에 처했다. 그렇게 강한 집념으로 불사약을 구하려 했으나 한중, 서불(서귀포 등 한국 남해안에도 다녀갔다는 설이 있음), 후생, 노생 등이 약 구하러 간다며 돈과 여러 가지 이익을 챙긴 뒤 도망가버렸다. 사기 당한 것이다. 노한 진시황이 이를 계기로 유생들을 탄압, 악명 높은 분서갱유로까지 이어졌다.

한무제도 불사약을 구해 준다는 이소군, 소옹 등에게 사기를 당한 뒤 백대라는 높은 누대를 짓고 그 위에 구리로 만든 승로반을 놓아 이슬을 받았다. 그걸 옥가루 등과 섞어 아침마다 마시면 불로장생한다는 말을 믿은 것이지만 효험은커녕 수은중독으로 죽었다는 설이 있다.

'별주부전'의 왕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이지만 무병장수약인 토끼간을 구하려다 오히려 토끼에게 당하고 말았다. 모두 막강한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불사약 구하기에 혈안이 되었으나 결국 사기만 당했다. 오늘날도 건강식품을 둘러싼 갖가지 사기사건이 빈발하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무병장수 욕구와 사기는 밀접한 관계인 듯 해 쓴웃음이 나온다.

그렇다고 무병장수, 불로장생욕을 비웃을 수만은 없다. 현대인들도 권력, 금력 유무와 그 정도의 차이를 떠나 모두 여기에 관심을 두고 나름대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시황이나 한무제처럼 터무니없는 방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보편타당하고, 자신이 노력만 하면 상당 부분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관계전문가들이 권하는 무병장수 방법은 정말 평범하다. 소식, 지속적인 운동, 음주절제, 흡연금지, 겸허하고 여유 있는 태도,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 등 여기에서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아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내 친구 중에 이를 그대로 실행한 친구가 있었다. 아니 이런 지침보다 더 엄격하게 실천했다. 그는 음주, 흡연은 당연히 금했고 골프 등 운동을 열심히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뒤 고향에 내려가 가업을 이었는데 하루 세끼를 가능한 한 집에서 먹었다. 밖에서 사 먹는 것은 위생상 좋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향에는 집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서울에 출장이라도 오면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우선 현미밥을 하고, 반찬에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집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밖에도 따지는 것이 많았다. 마치 건강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와 식사라도 한번 하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그렇다고 앞뒤가 꽉 막힌 성격은 아니었다. 하루에 아는 사람 세 명 이상에게 안부전화를 해서 서로간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한다며 이를 열심히 지켰다. 정신건강과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도 비상한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런 그가 50대 중반 한창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들은 아연했다. 그토록 노력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허무하다니. 전문인이 아닌 우리들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건강을 지키려는 정성이 병적인 건강염려증으로 바뀌고, 이에 대한 지나친 의욕이 스트레스를 유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만 했을 뿐이다.

그 친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렇게 해봐야 소용없더라는 말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사람으로서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 다음은 천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말하고 싶어서이다. 그때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는 말을 절감했다.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사다. 따라서 건강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앞의 친구처럼 노력을 했는데도 천명이 따라주지 않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도 어느 점에서는 필요하다.  인간이 본래 그렇게 허약한 존재이니 어쩔 것인가.

몸의 건강이 하드웨어라면 이를 이용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은 소프트웨어라 하겠다.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운용해야 의미 있는 무병장수가 가능하다.
근년에 들어 장수를 누리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소프트웨어가 미비해 무의미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분들을 더러 볼 수 있다.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이나 공부, 봉사활동, 취미 생활, 운동 등 어느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억지로 시간을 보내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딱하다.

그건 본인의 크나 큰 손실이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과 괴로움을 주는 일이다. 건강 유지에는 성공했는데 그걸 활용할 방법을 찾는데는 실패한 결과이다.

이렇게 되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되는 것이다. 앰브로즈 비어스가 '악마의 사전'에서 '장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연장해준다'고 비꼬았는데 장수가 그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평소 건강 유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실행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바른조달 겨울호(2008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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