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95 [칼럼니스트] 2007년 12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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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웃음소리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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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쓰고 가는 사람 반, 그냥 가는 사람 반 정도로 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 하는 늦은 봄날이었다. 우중충한 지하시장 밥집에서 점심과 반주로 얼큰해진 우리 일행이 밖으로 올라오다가 무슨 얘기 끝에 동시에 폭소가 터졌다. 걸음을 멈추고 서로 쳐다보며 파안대소한 것이다.
입구에서 그런 우리를 보던 노점상 아주머니가 허리를 잡고 웃었다. 그 아주머니가 우리 얘기를 들었을 리 없고, 일행 중에 아는 이도 없는데 덩달아 웃으니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았다. 약간 계면쩍고 무안한 느낌이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아줌마는 왜 웃어요? 혹시 우리가 뭘 잘못 했나요?"
"아이구 잘못하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그렇게 티없이 천진난만하게 큰 소리로 웃는 걸 너무 오랜만에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덕분에 저도 마음놓고 웃어 봤어요"
장난치다 들킨 것처럼 머쓱해진 우리는 그 엉뚱한 대답에 안도하면서도 '티없이'니 '천진난만'이니 하는 말이 좀 쑥스러웠다. 지공(지하철 공짜인 65세)넘은 한 사람, 지공에 육박하는 두 사람, 50대 막바지 한 사람인 우리를 티없고 천진난만하다면 과장도 지나친 것이라 말 같은 소리를 하라고 눙쳤더니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웃음에 나이가 있어요? 저도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어요. 어르신들 아까 웃음은 보는 사람도 즐거운 순수한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가 남자 웃음의 실종이라는 것이었다.
행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근년에 남녀 구분 없이 목소리가 커지고 특히 여자들 웃음소리는 더욱 유난스러워졌는데 상대적으로 남자 웃음소리는 농촌의 신생아 울음만큼 드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요즘 남자들의 가정 및 사회적 위치가 반영된 듯해 씁쓸하다며 우리들더러 많아 자주 웃으라고 당부했다.
'웃음은 내면의 조깅'이니 뭐니 하면서 건강증진에 필수적이라는 주장과 관련 연구결과가 이미 많이 나와있다. 그런 학술적인 증거가 아니라도 즐겁고 기뻐서 웃는 웃음은 남도 흐뭇하게 해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며 복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10년전 IMF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겼다고 정부와 언론 등은 말하지만 개개인에게 남은 상처는 대부분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런 판국에 무슨 웃음이 나오겠는가. 특히 남자들에게는.
그럼에도 우리는 그날 순간이지만 마음놓고 웃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 만나도 부담 없고 편한 사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흐뭇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평화대사 (2007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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