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93 [칼럼니스트] 2007년 11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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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더라방송과 커뮤니케이션

이재일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netporter


최근 중년나이의 정소녀라는 가수 겸 탤런트가 TV방송에 자주 출현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70~80년대 최고 CF 퀸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수입을 올리던 최고 인기 탤런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광고가 끊어졌다. 이유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의 내용은 “한국을 방문했던 한 아프리카 대통령과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고 흑인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온 나라에 퍼져 삼척동자도 알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결국은 방송을 떠났지만 흑인아이를 낳았다는 오해의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다.

정소녀에 관한 헛소문이 퍼진 것은 이른바 ‘카더라방송’과 ‘유비통신’ 을 통해서였다. 불행히도 잘못된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동안에도 주위에서 알려주지 않아 본인은 몇 년이 지나도록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해명할 기회조차 놓쳐버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된 채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지난날에 ‘카더라통신’이나 ‘유비통신’이 있었다면 지금 인터넷시대에는 ‘퍼뮤니케이션’이 있다. ‘퍼가다’와 ‘커뮤니케이션’의 합성어로, 인터넷상에 올라 있는 글이나 자료를 다른 사람이 그대로 복사해서 옮겨가는 것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어떠한 내용이라도 아무런 대가없이 손쉽게 자신의 블로그나 홈피에 옮겨갈 수 있다. 그러다보니 사실이 아닌 내용도 이곳저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특히 연예인의 경우 엉터리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심지어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인터넷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정대선씨와 결혼한 전 KBS의 아나운서 노현정씨의 이혼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아시아투데이라는 인터넷매체가 현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지난 7월 두 사람이 협의이혼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곧바로 반론을 제기하면서 해당기사는 삭제됐다. 이혼설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지만 아니 두 사람에게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만약 정소녀가 지금과 같은 인터넷시대에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처럼 지독한 헛소문에 시달려 평생을 괴로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까. 상황은 분명히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은 소문이 나자마자 본인이 알았을 것이고, 비록 소문이 순식간에 쫙 퍼졌다고 해도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해명을 했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팬클럽 회원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테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취재해서 진위여부를 가려냈을 것이다.

사이버공간의 문화적 특성은 대체로 개방성, 참여성, 공유성, 저항성, 익명성, 자율성 등 6가지로 나뉜다. 개방성과 참여성, 저항성은 인터넷이 참다운 존재가치를 갖게 하는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개방하고 누구나 참여하며, 잘못된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귀중한 선물이라고 하겠다.  

공유성도 잘만 활용하면 대단히 귀중한 덕목이지만 잘못 이용될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무 것이나 분별없이 옮겨가는 펌질은 바로 공유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이버공간에 있는 모든 정보는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생각이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익명성은 근거 없는 소문을 쉽게 퍼뜨리게 해준다.

그런 만큼 네티즌들이 마음에 꼭 새겨야 할 덕목은 자율성이라고 하겠다. 존 페리 발로가 1996년에 발표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의 기본정신도 사이버공간에서 철저히 자율성을 지켜나가는데 두고 있다. 발로는 선언문에서 “우리는 윤리와 자율과 그리고 공익으로부터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파했다.

그때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발로가 기대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네티즌들이 자율적으로 인터넷문화를 올바로 가꾸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시 말해 개방성, 공유성, 익명성 등에만 탐닉한 채 자율성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비록 육체에 대한 당신들의 지배를 승인할 지라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당신들의 지배로부터 해방됐음을 선포한다. 결국에는 그 누구도 우리의 생각을 구속할 수 없도록 우리는 우리의 사유와 사상을 지구 전체에 퍼뜨릴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이버공간은 ‘당신들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지 않았고, ‘마음의 문명’이 건설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별 가치가 없는 사유와 사상을 지구 전체에 퍼뜨린 나머지 삭막한 공간이 됐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네티즌들이 자율적으로 ‘펌문화’를 올바르게 가꾸어 나간다면 사이버공간은 한결 밝은 세상이 될 것이다. <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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