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87 [칼럼니스트] 2007년 9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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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뿐이다

이재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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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짜박사 신정아씨가 오래 전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알아낸 결정적인 단서는 너도나도 쓰고 있는 e-메일이다.

변씨는 그동안 신씨와는 그저 아는 사이일 뿐 뒷배를 봐준 일은 없다고 발뺌했지만 검찰은 신씨의 컴퓨터에서 100여 통의 e-메일을 복구해냄으로써 두 사람이 내밀한 사이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신씨의 컴퓨터에서는 2005년 가을 이전에 변씨로부터 받은 e-메일만 확인했을 뿐이어서 일각에서는 변씨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썼던 컴퓨터를 확보해 조사하면 더 많은 것을 알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검찰은 청와대에 남아있을 ‘결정적인 증거’들을 아직 확보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검찰이 요청할 경우 문제의 컴퓨터를 넘겨줄 수 있다는 뜻을 비쳤지만 그럴 의지나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신정아씨 비호의혹 사건’의 변씨와 신씨 두 사람의 차원을 넘어 여러 사람이 연루된 ‘신정아 스캔들’로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사건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던 시민들은 지워진 e-메일을 복구해내 두 사람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검찰을 칭찬하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삭제해버린 e-메일을 검찰이 도로 살려내서 꼼짝 못하게 했으니 박수를 받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검찰의 수사에 탄복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네티즌으로서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주고받는 것이 e-메일이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슨 내용인지를 확인할 수 있으니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일이다.    

e-메일로 주고받는 내용은 다양하다. 남에게 공개하기 곤란한 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스스로 지워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삭제를 했다고 해도 원본 데이터는 하드디스크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완전 삭제가 가능토록 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지워진 데이터를 복구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력을 발휘하여 얼굴 두껍게 거짓말을 해대던 변씨의 허상을 벗겨냈다. 권력의 핵심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변씨는 하루아침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속 시원하다며 박수만 치고 있기에는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진다. 무슨 까닭일까.

그 이유는 삭제됐던 e-메일이 복원되는 바람에 ‘자신만 아는 비밀’이 갑자기 ‘만인이 아는 사실’로 변하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광경을 보고 어찌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기보다는 침해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 각종 통신회사나 포털사이트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회원으로 가입할 때, 또는 이동전화를 살 때 제공하는 개인의 신상정보는 외부로 쉽게 흘러나갈 뿐 아니라 실제로 유출돼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어떻게 주소와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나 업체에서 보내온 우편물을 받게 된다. e-메일로 배달되는 경우는 더 많다. 그들이 우편물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카드회사나 이동통신, 포털사이트 등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는커녕 멋대로 유출시켰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이 몇 차례나 주민등록증을 전자카드로 바꾸려다가 반대여론에 부딪혀 계획을 포기한 것도 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문제 때문이었다. 조그만 카드하나에 자신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개인의 모든 정보는 정부기관에서 고스란히 쥐고 있는 가운데 일거수일투족을 쉽사리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사실 1970년대 유신시절에는 정부를 비방하는 내용이나 아주 중요한 보고사항은 전화로 하지 않는 것이 상식화돼 있었다. 필자가 일선기자로 뛸 때 조금이라도 정부의 비위를 상하게 하거나 불리한 내용일 경우에는 일단 개요만 전화로 알려준 뒤 회사로 가서 직접 보고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유선 상으로 말하다가 도청 당하면 어떤 낭패를 볼지 몰랐기 때문이다.

감청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첨단 시스템으로는 미국 국가안전국(NSA)이 운영하는 에셜런(Echelon)을 들 수 있다. NSA는 직원 2만명에 20여대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어 규모면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능가하고 있다. 한 동안 베일에 싸여 있다가 몇 년 전에야 그 존재가 확인됐다.

에셜런은 세계 각처에 설치해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하늘에 떠도는 모든 인공위성과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통신을 검열하면서 전세계 인류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전파를 이용하는 통신이라면 전화든, e-메일이든, 휴대폰이든, 팩시밀리든 관계없이 모두 NSA의 ‘에셜런 딕셔너리’라는 초특급 컴퓨터를 통과하면서 여과 및 분석된다고 한다.

‘그림자정부’의 저자 아리유카바 최는 그의 저서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불감증이 전 사회에 번져나가고 있다”면서 인류의 사생활에 커다란 침해가 시작된 것은 9· 11 뉴욕 대참사 이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빼앗기면서도 안전을 지켜준다며 오히려 고마워하는 실정이라고 꼬집고 있다.

저자는 특히 “사람들은 어렴풋이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서 “한번 빼앗기고 나면 매우 아쉬운 것이 바로 프라이버시이며, 그것을 되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렉 휘태커 교수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프라이버시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다. 벌써 8년 전인 1999년의 일이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한술 더 떠서 제목을 아예 《개인의 죽음》이라고 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넘어 개인 자체가 죽었다는 뜻이다. 제목만으로도 번역자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21세기 고도정보화사회가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노출된 채 불안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 이러다가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브라더’가 곧 나타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인간의 생활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해본다.

“프라이버시는 사라졌다. 안전한 것은 머리 속에 있는 것뿐이다.” 1998년에 개봉된 미국 첩보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어쩌면 이 같은 대사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지구상에서 개인의 비밀과 사생활을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0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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