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75호 [칼럼니스트] 2007년 6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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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협상(8) : 신통상정책


홍순훈 (한-러 합영회사 코야쿠츠콥 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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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7일(2007년) 언론 보도에, ‘한미FTA 재협상 논란과 관련해 (미국측과) 추가 협의를 먼저 해보겠다‘는 외통부 장관의 말이 실렸다.
이 말을 6월8일자 언론 보도와 연계시켜 보면,
<첫째> 5월29일부터 6월6일까지 미국에서 열린 한미FTA협정문 법률 검토 작업에서 추가 협의에 대한 얘기가 없었고,
<둘째> 미 의회와 행정부 사이의 ‘신통상정책’ 합의 내용을 법 조문화하는 작업도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측 추가 협상 제의는 늦어질 것이 뻔하다. 그러니 한국이 먼저 추가 협의(협상)를 제안하겠다는 것이다.

5월 중순에는 이구동성으로 ‘재협상 없다’ 큰소리치다가 / 며칠 지나서는 ‘협상 결과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전제’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수용한다’고 꽁지를 내리다가 / 이제는 아예 한국이 ‘먼저 추가 협의를 제안하겠다’니, 이런 줏대 없고 쓸개 빠진 노정권(협상단)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한국민들 참으로 불쌍하다.

<첫째>의 미국 얘기는 국회쪽에서도 나왔었다. 즉 5월28일자 언론 보도에, 김 외교통상위 위원장이 ‘5월29일 이혜민 한미FTA기획단장을 단장으로 하는 9명의 실무 대표단이 FTA협정문의 한글본, 영문본을 확정키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다고 들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 4월2일 한미FTA협상이 타결, 종료됐다고 양측 수석대표가 TV카메라 앞에 서서 희희낙락 기자회견을 했다 / 그 후 1달하고도 20일 넘게 ‘조문화 작업 과정에서 세부적인 논의가 덜 끝난 사항들에 대해 추가적인 협의’까지 했다 / 그런 후인 5월25일 FTA협정문이라 국민 앞에 공개했다 -- 이런 2중3중의 과정을 거쳤는데 또 무슨 법률 검토 작업 운운하며 협상단이 떼거리로 미국에 몰려갔다니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들인가?

4.2협정문을 5.25협정문으로 순간 변환시킨 전례로 봐서, 이 고둑고양이 협상단은 이미 ‘재협상 또는 추가 협상’을 진행 중이라 볼 수 있다. 말이 좋아 ‘협상’이지 실제는 미국분들 하는 얘기 귀담아 잘 듣고 그걸 한글로 번역하여 5.25협정문을 첨삭(添削)하는 작업이다. 적당한 시점에 그 첨삭본을 ‘최신판’ 또는 ‘최종 협정문’이라며 활짝 펴드는 쇼를 한다.

한국 관료들의 이 같은 등신짓과 생쇼를 캄플라지하는 요즘 단골메뉴가 위 <둘째>에 나오는 ‘신통상정책’이다.
지난 5월11일 미 무역대표부(USTR) 슈와브 대표가 그들 홈페이지에 ‘Final Biapartisan Trade Deal’(최종 양자 무역 지침)이란 제목의 글을 게재했었다. 같은 날 5월11일 한국 외통부도 이 글을 번역하여 ‘5.10 미 의회, 행정부간 신통상정책 합의 관련’이란 제목으로 외통부 홈페이지에 실었다. 미국의 ‘Trade Deal’이 ‘신통상정책’으로 바뀐 것이다.

슈와브 대표가 그의 글머리에 ‘The new trade policy' 란 말을 쓰긴 썼다. 그런데 그것은 고유명사 ‘신통상정책’이 아니고, ‘새로운 무역 수단’이란 일반적 의미다. 그 수단이 무엇인지 그 구절 바로 아래 붙어 나온다. ‘미 의회의 의견을 존중하여(Congressional consideration), 미 행정부가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과 FTA를 잘 수행한다’는 것이다.

‘FTA를 잘 수행’하기 위해 미국은 아주 효율적이지만 경우는 빵점인 ‘수단’을 고안해냈다. 즉 미 의회가 FTA협정문의 골격과 본문을 미리 만들고, 그것을 미 행정부가 FTA 상대방 국가에게 내밀고, 상대방 국가는 빈칸에 이름이나 숫자 따위만 써 넣는 것이다.

사실, USTR 홈페이지에 나온 페루 등 3개국의 FTA협정문과 한국의 5.25협정문을 비교해 보면;
작년에 이미 서명까지 마친 페루와 콜롬비아의 2 협정문은 골격(Chapter; 분야)이 23개장으로 순서마저 완전히 같다. 그 내용 역시 거의 동일한데, 빈칸에 나라별로 숫자 정도만 바꿔 넣은 형태다.
위 2나라와 파나마도 마찬가지다. <섬유 및 의류> 그리고 <경쟁관련 사안> 2분야가 빠지고, 그 대신 협정문 첫머리 <최초 규정과 정의>를 <최초 규정>과 <정의> 2분야로 나눠 위 2나라와 마찬가지 23개장으로 꿰맞추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위 3나라와 한국도 마찬가지다. 3나라에 없는 <농업>과 <의약품 및 의료기기> 분야를 넣고, 3나라에 있는 <협상과 무역 관리>를 빼서 24개장이다. 내용 역시 3나라 협정문과 구구절절이 같으며 명칭과 숫자 바꿔 넣기 정도 다르다.

이런 붕어빵 찍어내기가 미국의 신통상정책이라면 정책인데, 4.2FTA협정문은 여기에 맞지 않아 볼것 없이 폐기 처분했다 치자.

그런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5월11일에 신통상정책이 발표됐다 / 이 발표 후 보름 정도 지나 5.25FTA협정문이 공개됐다 / 그렇다면 당연히 5.25협정문에는 신통상정책을 반영해 넣었을 것 아닌가? / 그런데 뭘 더 협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있는가 --다.

위의 <둘째> 내용인데, 만약 미 의회와 행정부 사이의 ‘신통상정책’ 합의 내용이 법 조문화돼야만 하고 / 그 미국 법을 한미FTA협정문에 넣어야만 된다면 / 지금까지 한 협상을 모두 무효로 해야 된다 / 한국도 FTA관계법을 새로 만든 후 협상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옳다.

FTA한국측수석대표의 계산만으로도 한미FTA를 시행함으로써 개정해야 할 법률이 20개 안팎, 고시나 시행령까지 합치면 40개 정도가 된다 한다. 한국은 이런 기둥뿌리 흔드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FTA를 하는데, 미국은 태어나지도 않은 법을 FTA협정에 넣겠다고 생떼를 쓰니, 세상에 이런 불공정한 행위가 어디 있는가? <계속>

2007.06.12
인용, 전재 허용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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