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71 [칼럼니스트] 2007년 6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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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라는 악성 바이러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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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다 수도권의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로 이사 간 지인의 집을 찾아갔다. 보람 있는 노후를 위해 옮긴 것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결정한 부득이한 처사라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세 들어 사는 집 옆으로 다정하게 흐르는 개천과 널린 밭들, 그리고 걸음걸이에 여유가 있는 동네사람들의 표정이 넉넉해 보였다. 경제적 타격의 후폭풍이 매우 거세 근본적인 해결이 나지 않는 한 고통이 크게 줄지는 않지만 그런 환경에 적응해 살면 서울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아주머니에게 위로 겸 인사차 새 이웃들과 사귀면서 마음 분위기를 좀 달랬느냐고 물으니 "사귀면 뭘 해요. 시골사람들인데..."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가벼운 인사말에 갑자기 경색된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버스 타고 한 시간 정도면 서울에 닿는데 무슨 시골이에요? 또 시골사람하고 서울사람이 다를 게 뭐 있어요?"하고 재차 말을 꺼냈다. 이어 서울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물으려 했더니 찬바람이 쌩 도는 얼굴로 말을 막았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이지 다를 게 뭐 있어요? 모르는 말씀 마세요" 말마다 가시가 돋고 경멸과 증오가 묻어났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나도 다 시골 출신 아니냐고 반문하려다 더 이상 화제를 이어 가면 상당히 불편한 일이 생길 것 같아 거기서 그쳤다. 아저씨 역시 눈치를 채고 집사람은 본래부터 시골과 시골사람이라면 저렇게 싫어한다고 매듭지었다.

어떤 연유로 시골에 대한 혐오감이 그렇게 뿌리 깊이 자리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가정교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내가 시골고교 출신이기 때문에 겪었던 갖가지 수모들이 저런 아주머니들 편견 때문이었음을 재확인하니 기분이 새삼 떨떠름하고 씁쓸해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로 인한 상처를 적지 않게 받았는데 그 편견의 독성을 노골적으로 접하니 속이 편치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것이 머리 속에 꽉 들어차 개운하지 못했는데 문득 나는 편견이 없는가 하는 물음이 일면서 기분이 더욱 착잡해졌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 아주머니를 비난할 게 하나도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크고 작은 편견들이 내게도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어리석음과 우매함으로 뒤범벅이 된 그 침전물을 자각하면서 내 자신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이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처음 본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그를 짐작하는 일부터 특정 외국인, 인종, 어느 지역 사람들, 특정 학교 출신 등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편견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만한 것이 없었다. 가족을 비롯한 친구, 지인들을 생각해 보아도 나와 별 차이가 없이 비슷비슷했다. 편견을 마음 속 깊이 감추고 있는 사람과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의 차이만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이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식이란 18세까지 후천적으로 얻은 편견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편견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고 그걸 상식이란 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경험이라는 것까지 내세워 편견을 더욱 조장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인체 내에 불가피하게 독소와 노폐물이 쌓이듯이 마음에도 편견이 그렇게 축적되며 정신건강을 좀먹는다. 전염성도 매우 강해 짧은 시간 내에 인간과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유태인, 흑인에 대한 편견은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고 우리도 근세까지 남녀, 적서차별 등으로 수많은 이들을 비애와 좌절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금도 장애인, 특정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무지몽매한 편견과 차별이 엄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몸 안의 독소나 노폐물은 해소하고 제거하려고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꾸준히 노력한다. 건강과 노화방지를 위해 부득이한 것이라면서 누구나 당연시한다.

그러나 마음의 독소인 편견은 시골사람을 증오하는 그 아주머니처럼 도대체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건 몸 안의 그것들처럼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얼른 봐서 자신에게 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짧은 생각이다. 편견은 우리 누구나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지극히 고약한 악성 바이러스이다. 편견으로 사회전체가 병든 상황에서 과연 누가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지적하듯이 오만은 타인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막고, 편견은 내가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는다. 이렇게 되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이겠는가.

우리 속담에도 '지레짐작 매꾸러기'라는 말이 있다. 지레짐작은 다름 아닌 편견과 선입견이다. 그것은 대체로 오해와 증오를 동반한다. 그 속담은 결국 그 피해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라는 경고이다.

편견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몸 속의 노폐물처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맑은 마음과 날카로운 이성으로 늘 걸러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편견에 맞서 투쟁하는  피해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정신의 건강과 인간에 대한 희망은 바로 여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복지' 5,6월호(2007)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