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69 [칼럼니스트] 2007년 6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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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탄압 원흉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자

이재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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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각 부처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이 끝내 확정됐다. 국정홍보처가 마련한 이 방안은 현재 정부부처 내에 마련된 37개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정부중앙청사, 과천청사, 대전청사 등 3곳으로 통·폐합하는 대신 전자 대변인, 전자 브리핑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이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이지 내용은 ‘기자실 폐쇄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16일 국무회의에서 “몇몇 기자가 딱 죽치고 앉아 기사 흐름을 주도하고 담합하는 구조가 외국에도 일반화돼 있는지 각국의 기자실 운영 실태를 조사해 보고해 달라”고 지시한지 넉 달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진보·보수 언론 가릴 것 없이 국내의 모든 신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이른바 ‘조중동’ 3개 신문이야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여권매체인 한겨레신문과 서울신문도 이번 조치가 잘못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자실 폐쇄와 관련해서 필자도 비극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서대문경찰서(마포·북부경찰서 포함)를 출입하는 사건기자(경찰기자)로 뛸 때였다. 박정희 정권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조리를 일소한다”는 등의 이유로 서울시경만 빼놓고 일선 경찰서 기자실을 없애버렸다.

처음 기자실이 없어지자 가장 좋아했던 것은 경찰서 간부들이었다.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있을 곳’이 없어졌으니 경찰서에 잘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기자들은 오히려 더 열심히 취재했다. 갈 데가 없으니 경찰서를 샅샅이 뒤지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자보다 더 피곤한 것이 경찰이다. 기자들이 쉬지도 않고 열심히(?) 취재한 덕분에 경찰 ‘조지는’ 기사도 참 많이 보도됐다. 기자실 폐쇄가 경찰 탓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경찰은 기자들의 분풀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로서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었다.

특히 수사과장이나 형사계장은 속된 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결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의 방을 차지해서는 ‘기자실에서 늘 하던 일'을 했다. 속으로는 욕을 했겠지만, 면전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기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쉴 곳이 없어진 기자들은 하루 종일 경찰서에서 취재만 할 수 없는 일인지라 각사가 공동으로 돈을 모아 인근 여관에 방을 얻어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상황은 신군부가 집권한 뒤에도 계속되다가 1987년 ‘언론자율화조치’가 발표되면서 끝났다. 일선 경찰서에 기자실이 부활됐던 것이다.(이 조치가 있기 이전 몇년 전부터 경찰서 기자실은 음성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이번 조치를 보면 기자들이 관공서를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해놓았다. 소정의 절차를 밟아야만 취재가 가능토록 했으니 취재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나 다름없다. 옛날의 경찰서처럼 기자실이 없더라도 취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더욱 열심히 돌아다니겠지만, 그게 아니어서 기자들이 앞으로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인지가 걱정이다.

기자들에게 취재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어느 신문 사설 제목처럼 ‘언론자유를 뿌리 뽑는 것’이 아니라 ‘언론 자체를 뿌리 뽑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어떤 신문은 “5공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1980년에 자행된 군부에 의한 언론사 통폐합 및 기자 강제해직에 버금가는 ‘군사독재정권식 언론탄압’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 몇몇 신문들은 기자실 통폐합을 주도한 핵심관계자들을 별도기사로 소개했다. 이 가운데 이병완 정무특별보좌관전 비서실장(53·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김창호 국정홍보처장(51·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50· 전 한국일보 사회1부장),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43·전 언론노보 기자) 등 4명은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기자출신이다.

이들의 나이를 보면 1980년의 언론통폐합 때는 기자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기껏해야 올챙이기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기자실 폐쇄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자신들이 역사와 국민 앞에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신문들이 이들의 이름을 특별히 거명하면서 얼굴사진까지 실은 것은 이들이 저지른 ‘못된 짓’을 똑똑히 알아 두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언론탄압 원흉들의 이름을 단단히 기억해야 한다. 이들의 더러운 이름을 역사에 또렷이 새겨 넣어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또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

-200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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