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61호 [칼럼니스트] 2007년 4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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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협상(3) : 장롱을 들이겠다 집을 허물어?


홍순훈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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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2007년) 3월 한미FTA가 ‘높은 수준’의 협상이니 아니니 설왕설래하고, ‘중간 수준’, ‘낮은 수준’ 소리도 나왔었다. 또 이 기준은 ‘개방 정도 90% 이상’이다, ‘서비스-투자 시장의 개방 폭’이다 하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WTO홈페이지를 보면, 이런 설과는 달리 ‘높은 수준’을 정의해 놨다. 즉, High-Level Meeting on integrated initiatives for Least-Developed Countries' Trade Development 인데, “높은 수준의 협상[High-Level Meeting]은 저개발국가[Least-Developed Country]의 무역 개발을 돕기 위해[for] 통합적(또는 포괄적)으로 발의[integrated initiatives]하는 것”이다.
※ ‘저개발국가’란 UN 분류를 참조하여, WTO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소재한 국가들을 골라 지정한 것인데, 2007년 4월 현재 앙골라, 방글라데쉬, 캄보디아, 탄자니아 등 32개국이다.

위의 WTO 정의만 가지고는 ‘높은 수준’을 이해하는 데 부족할 것 같다. 외교통상부가 4월4일 발표한 ‘한미FTA 분야별 최종 협상 결과’란 문건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설명해본다.

그 문건의 목차가 <1.상품 2.농업 3.섬유 4.원산지 5.통관 6.무역구제 7.위생검역 8.TBT(기술장벽) 9.자동차 10.의약품/의료기기 11.투자 12.서비스 13.금융서비스 14.통신 15.전자상거래 16.지식재산권 17.정부조달 18.경쟁 19.노동 20.환경 21.총칙>이다.

한미FTA란, 말 그대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 거래되는[Trade] 상품의 관세를 철폐[Free]함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이다. 이 목적에 부합되는 분야가 위 목차에서 <1.상품 2.농업 3.섬유 9.자동차 10.의약품/의료기기 15.전자상거래>다.
이 6개 분야만 해도 관세를 철폐하느냐 유지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모든 상품 생산자 및 기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5.통관 6.무역구제 7.위생검역 8.TBT(기술장벽) 11.투자 12.서비스 13.금융서비스 14.통신 16.지식재산권 17.정부조달 18.경쟁 19.노동 20.환경 21.총칙> 분야는 관세 철폐[Free Trade]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다만 무역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회 시스템이다.

이상을 보면 자연히 한미FTA협상에서의 ‘높은 수준’이 무엇인가가 설명된다. 즉 무역에 걸림돌이 되는 관세를 철폐함은 기본이고, 미국이 한국을 저개발국가로 취급하여 한국의 체질(또는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 미국과 동등하게 무역에 적합한 나라로 만든다[美國化]는 뜻이다.

이에 따라 자동모드로 변경되는 것이 저개발국가의 법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측 계산으로는 현행 한국 법률의 15%인 169개 법률이 협정과 상충된다 하고, 김FTA한국측수석대표의 계산으로도 개정해야 할 법률이 20개 안팎, 고시나 시행령까지 합치면 40개 정도가 된다 한다. 이는 큰 장롱을 방에 들여놓겠다고 방문을 부수고 벽을 허무는 형상과 영락없다.

사실 외통부 문건을 보면 자주국가 국민으로서는 낯뜨거운 내용이 곳곳에 박혀 있다. 몇 가지 예인데;
<21.총칙>에 ‘시행령, 시행규칙의 입법예고 기간을 현행 20일 이상에서 40일 이상으로 연장’한다고 아예 지시해 놨다.
<18.경쟁>에는 공중의견제출제도, 동의명령제 따위를 만들어 한미FTA위원회가 시행토록 했는데, 이는 위원회가 한국의 수사기관 노릇도 하겠다는 것이다.
<19.노동>에는 3명의 패널(Panel ; 양국 전문가 1명, 제3국인 의장 1명)로 중립적인 분쟁 판정기구를 만든다. 이 패널 권고안을 불이행시에는 연간 건당 1500만불 이하의 위반 과징금을 부과 가능토록 했다. <20.환경>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1500만불이면, 환율 1불 대 900원으로 계산해도 한화 135억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는 노동쟁의에 이런 천문학적 과징금을 물어가며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도대체 한국에 몇 개나 되겠는가? <20.환경>의 비슷한 내용은 미국제 환경설비를 팔아먹기 위해 한국 기업에 겁주려 써 놓은 것 같다.

WTO는 2007년 4월 현재 150개 회원국, 31개 옵서버국으로 이뤄진 범세계적인 다자간(多者間) 무역 기구다. 이 WTO 산하에 무역정책검토기구(TPRB)도 있고, 위와 같은 1500만불을 해결할 분쟁조정기구(DSB)도 있다. 한국은 10 몇 년전 WTO 설립 당시부터 회원국이었는데, 이 기구뿐 아니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저작권조약, 특허협력조약(PCT), 몬트리올의정서를 비롯한 다자간환경협약(MEAs) 등 경제에 관한 국제 조약이라면 가입하지 않은 조약이 없다.

한국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오지에 있는 저개발국가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 양자간 FTA에도 WTO를 비롯한 다자간 협약을 원용해 쓰면 되지, 별도로 다시 문서화할 필요가 없다. 한미FTA협정 원문이 영어로 800페이지나 된다는 보도다. 그 원문 어딘가에는 결정적 순간에 한국이 망연자실할 함정이 반드시 숨겨져 있다. 그와 같이 하는 습성이 백인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음은 필자가 여러 번 체험했다.

그리고 FTA를 맺더라도 서로 이익이 날 분야를 먼저 맺고, 그 경과를 보고 대책을 세워가면서 다음 분야를 추진하는 것이 순리지, 잘 나가던 무역 뭐가 그리 급하다고 집을 헐고 난리인가? 정권이 끝난다고 국가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

-2007.04.28 @ 인용, 전재 허용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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