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60호 [칼럼니스트] 2007년 4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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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협상(2) : 신문찢기 마술


홍순훈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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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권이 발표한 ‘한미FTA홍보문서’들을 보면, 약방의 감초꼴로 집어넣은 낱말이 ‘투명성’이다. ‘투명성 제고, 강화 그래서 선진화’ 등 마치 ‘한미FTA 곧 투명성’인 것처럼 읊어놨다.

그런데 최근 협정문 공개를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영 그게 아니다. <협정 원문을 / 국회에서 의원 및 그 보좌관 1명에게만 공개하는데 /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만 열람하고 / 메모도 간단한 기록만 인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FTA협상 중 ‘비공개 보고서’를 유출한 국회의원을, 협상이 종료됐다고 발표한 지 20일이 넘는 이 시점에, 국정원과 검찰이 지목하고 수사한다니, 누가 보든 유신 시대에 사람 지하실에 집어넣고 물 먹이던 검은 작태지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신문찢기 마술에는 신문 2장이 필요하다. 신문 1장은 접고 접어 지폐 반토막 정도 크기로 만든다. 다른 1장은 실제로 찢을 것인데, 거기다 접은 신문을 풀로 붙여 감춘다. 신문을 갈가리 찢으면서 어느 순간 감췄던 신문을 슬쩍 떼낸다. 떼낸 신문을 마술사가 활짝 펴들면, 관중들은 갈가리 찢었던 신문을 다시 붙인 것으로 속아 갈채와 환호를 보낸다.

‘한미FTA협정’이 마술과 같이 야바위라 여겨지는 보도가 4월20일 미국쪽에서 흘러나왔다. 즉 미국의 온라인 통상 전문 사이트 ‘월드 트레이드 온라인’이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FTA협정문 작업을 아직 진행 중’이며, 특히 ‘자동차 분야는 한미 양측 협상팀이 아직 협정문을 다듬고 있다‘는 것이다.

4월2일(2007년) 한미FTA협상이 타결됐다고 양측 수석대표가 기자회견한 것은 생쑈였다는 얘긴데,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당시 그들이 가진 것은 <500페이지 영문 협정문(그것도 미완성)>뿐이었다.
지금도 당시 상황과 바뀐 것이 없다. ‘한국어와 영어 협정문은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정본’이라고 FTA총칙에 쓰여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상호 인정한 한국어 협정문 정본도 있어야 되는데, 그건 어디 가고 영어 협정문만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보라 -그것도 슬쩍- 하는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리할 수 있다. 위의 ‘월드 트레이드 온라인’ 보도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그 곳 의회 의원 및 행정부 관계자들이 진작부터 영문 협정문을 읽었다 추정되는 보도가 계속 나왔었다. 읽었기 때문에, 미국의회에서 비준 동의가 어려우니, 노동, 환경 부문은 재협상을 해야 하느니 따위의 보도가 4월 초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지금 노정권은 미국에서 그들이 읽은 영문 협정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정한 부분 없이 O.K사인만 있으면 좋고, 만약 수정한 부분이 있으면 재빨리 한국어로 번역하여 갈아끼우려는 것이다. 그런 후 이게 한미FTA협정문이라 펼쳐 보인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협정문을 비준해야 할 국회의원들에게 컴퓨터 모니터만 보게 하고 메모조차 제대로 못하게 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O.K사인이 없는 지금 영문 협정문이 단 한 구절이라도 시중에 나돌아, 나중에 한글본과 다르니 어쩌니 하는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계략이다.

사실 4월2일자로 재경경제부, 농림부 등 6개 부처가 공동으로 작성한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보완 대책’이란 20여쪽의 문건이나, 4월4일자로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한미FTA 분야별 최종 협상 결과’란 84쪽짜리 문건 어디에도 FTA협정문의 <원문>은 단 1조항도 형태 그대로 인용된 것이 없다. ‘몇 조’라는 것도 없다. 미국에서 만약 1조를 끼워 넣거나 빼면 번호가 몽땅 바뀌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안 붙였다.

한미FTA협약은 투명성과 형평성의 결여로 말미암아 원천 무효다. 작성됐는지 안 됐는지조차 불분명한 국제 협약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가?
만약 한미FTA협약이 정당하다면, 1910년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둘이서 은근슬쩍 맺고 백성들에게는 쉬쉬 했던 한일합병조약도 정당하다. <계속>

-2007.04.23
@ 인용, 전재 허용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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