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56 [칼럼니스트] 2007년 4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20여 년 전 우리 집 큰 아이인 딸이 태어났을 때 겪었던 경험과 불편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애가 태어나자 절차에 따라 양가 부모와 가족, 가까운 친지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나절이 못되어 소식 전하는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 예상을 전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반응은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 한 마디로 새 생명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딸을 낳은 것에 대한 위로가 대세였는데 나는 그걸 모독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순산했으니 축하한다" "첫 딸은 재산 밑천이란다"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거라" 식의 축하 아닌 축하가 대종을 이루었고 "에이 그렇게 재주가 없냐" "너무 실망하지 마라" 등 노골적인 위로도 적지 않았다. 같은 고교, 같은 대학을 나온 선배 한 분을 비롯한 극소수만이 진정으로 새 생명에 대한 축복을 해주었고 대다수는 위로를 앞세우면서 딸에 대한 부정과 거부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장인까지도 "자네 혹시 섭섭한 것 아니냐" 하며 위로를 하셨다.그 뜻의 깊이를 모르는 바 아니나 좀 다른 표현으로 축하를 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사회의 전통적 남녀차별대우와 비인간적 인식을 모르지 않아 대강 짐작은 했으나 직접 겪고 보니 그건 너무나도 비이성적이었다. 아니 야만적, 폭력적이라 해야 옳았다. 더 이상  갓 태어난 내 아이에 대한 그들의 왈가왈부를 허용하고 싶지 않아 자발적 연락은 중단하고 물어오는 사람에게만 마지못해 알렸다.

혹시 나를 대단한 페미니스트나 여성영합주의자로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 봐 미리 말해두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여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남다르지 않다. 아내, 딸을 비롯한 여자들로부터 여자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구박을 받기 일쑤다. 다만 남녀에 대한 균형감각을 기르려고 노력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당시 내가 분노에 가까운 서운한 감정을 가진 것은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안다고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는 결혼을 늦게 한데다 아내가 두 번이나 유산을 했다. 그래서 나이 서른 여섯에야 첫 애를 본 것이다. 이를 지켜 본 그들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니 섭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초조와 신산한 과정을 고려하면 아내와 딸은 거창한 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이 가득한 자그만 미소와 축하를 받아 마땅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이 세상의 모든 산모와 신생아들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진정한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변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하긴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라는 산아제한 캠페인 구호가 낭자하던 시절이었으니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뒤틀린 의식구조가 너무도 당당했다. 축하라고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들이대는 사실상의 구박 앞에 딸과 그를 낳은 부모는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은 아들이라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확인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위치와 관계는 대등하고 당당하여야 한데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극심한 불균형을 이루었다. 그로 인한 마찰, 갈등, 비이성적 처사 등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이 사회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고 들었을 것이다.

딸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까이 지내던 친지 한 분에게서 착잡하기 그지없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당시 50대 초반이던 그 아저씨에게는 자녀가 딸 하나 뿐이었는데 그 애는 대학을 이미 졸업했다. 그런 아저씨가 뒤늦게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기쁨에 앞서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은 부모와 딸 세 식구가 질투심이 일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다. 누가 딸이 어떻고 아들이 어떻다고 말하면 나는 항시 그 집을 예로 들며 행복의 질을 이야기했다. 그런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아들에 대한 집요함을 흉중에 그토록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니 약간 허탈해지기까지 했다. 애를 낳기까지의 과정과 그 후유증을 알고 나서는 놀란 입을 다물기가 힘들었다.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부부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으나 의사가 출산은 아무래도 위험하니 재고하라는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아저씨는 포기하려는 생각을 갖기도 했으나 아들이라는 점과 죽어도 낳겠다는 부인의 의지가 하도 강해 출산을 강행했다.

그래서 오매불망하던 아들을 낳았으나 아주머니는 후유증으로 중환자실과 일반실을 한 달  가량 오가다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몹시 허망하고 분한 노릇이었다.

내 딸에 대한 많은 이들의 달갑지 않은 위로나 그 아저씨 가정의 비극은 남아선호사상이라는 횡포가 빚은 결과였다. 아저씨는 그 뒤 재혼에 재혼을 거듭하며 아들 키우는 재미와 희망으로 사셨으나 행복의 순도는 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과격한 측은 그걸 불행이라고 했으나 남이 그렇게까지 헤아릴 일은 아니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보면 가당치도 않는 이런 일들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당연한 상식처럼 횡행했다. 결혼과 자녀가 필수 아닌 선택이 되다시피 하고, 딸 아들 구별하지 않는 지금 세태에 대해 그런 점에서 나는 매우 우호적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딸과 아들은 구별의 대상이 아니라 태어났을 때는 새 생명으로 축복 받아야 하는 같은 존재이며, 성장하면서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인간으로 보호되고 교육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과거의 인습에 얽매인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생각을 가진 주변 사람들은 내게 아들과 딸이 모두 있기에 그렇다고 주장한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한번도 딸과 아들의 차이를 의식해 본 적이 없다. 굳이 있다면 딸과 여자들은 전화 통화 시간이 길고, 아들을 비롯한 남자들은 통화량이 짧으며 사무적이라는 등 몇 가지 사소한 행동의 차이 정도를 보고 느끼는 것뿐이다. 대신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 제 몫을 얼마나 충실히 그리고 보람 있게 실행해 낼 지에 대해서만 항시 유념할 뿐이다. 거기에 무슨 아들 딸 구분이 있겠는가.
 
'바른 조달' 봄호(2007 04)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