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49 [칼럼니스트] 2007년 2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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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개 1만 2천년간의 사랑과 우정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http://www.animalpark.pe.kr


며칠 전, 옆 동네에 놀러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그 마을에는 몇 년째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을 지키는 개가 있단다. 밥도 제대로 안 먹어 피골이 상접한 채 툇마루 아래 숨어 있다가, 인기척만 났다하면 ‘죽을 둥 살 둥’ 핏대를 세워가며 짖어대는 덕분에 친구도 없고 예뻐라 해 주는 사람도 없이 외로이 지낸다고 했다. 쯧쯧.

사연은 이랬다. 몇 해 전 그 집에 혼자 살고 있던 할머니가, 동네 사람 하나가 개장수에게 팔아넘기러 가는 길이라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치와와 잡종 한 마리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돈을 치러 개를 샀다. 장성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적적한 생활을 하고 있던 할머니에게 개는 자식과도 같았고, 둘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깐, 지병이 있었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로 개는 자신을 돌봐주려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도 외면한 채, 할머니가 돌아오길 기다리기라도 하듯 뒷산에 있는 할머니의 산소와 빈 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만약 ‘강아지들이 본받아야 할 99마리 견공’이라는 책이 있다면 틀림없이 주인공 자리를 꿰찼을 법한 개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장수에게 팔려갔다 산 넘고 물 건너 주인을 찾아온 우리나라의 진돗개 백구,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 몸으로 불을 끄다 타죽은 오수견, 10년간 시부야역 앞에서 죽은 주인을 기다린 일본의 하치, 14년간 주인의 무덤을 찾았던 스코틀랜드의 보비. 그 외에도 죽은 주인의 시체 곁을 지키느라 아사 직전 상태로 발견된 개,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주인의 유품상자 옆에 엎드려 지내는 개,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를 기다리느라 창가를 떠날 줄 모르는 개....... 아! 갑자기 숙연해 진다. ‘우우-’

어쩌다 사람과 개가 이토록 진하디 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진 않는지? 오늘날 길들여진 개(domestic dog), 즉 애견의 학명은 Canis lupus familiaris다. 늑대의 학명인 Canis lupus에 가족을 뜻하는 familiaris가 붙여진 것인데, 굳이 풀이를 해 보자면 가족이 된 늑대쯤이 될 것 같다. 지구상의 수많은 동물 중 ‘가족’이란 뜻이 들어간 학명을 선사받은 동물은 우리 개 밖에 없다. 게다가 개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인데(약 1만 4천년- 1만 2천년전 경), 이 말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동물이라는 말과도 같다. 인간과 가족이 된 늑대, 이들의 무려 1만 2천년 째 지속되고 있는 사랑.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자.

아주 오랜 옛날, 사냥꾼이자 사체처리반이기도 한 늑대가 음식물 찌꺼기를 손쉽게 얻을 목적으로 인간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자, 인간에게 붙잡히는 늑대도 늘어갔다. 애초에는 끼닛거리로 잡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늑대가 주는 이점들을 깨닫게 되었다. 늑대는 악취 및 벌레가 꼬이고 심지어 각종 질병의 근원이기도 한 음식찌꺼기를 말끔히 청소해 주었다(역사적으로 개를 가까이 접했던 민족들이 정착생활을 한 비율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놀라울 만큼 뛰어난 후각과 청각, 체력을 바탕으로 낮에는 먹잇감을 찾아 몰아주는 사냥 활동의 조력자가, 밤에는 침입자를 경고해 주는 명민한 파수꾼이 되어주었다. 서로에게 든든한 힘에 되어주기에 충분한 시대적 상황 아니던가?

한편, 서로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던 늑대와 인간의 만남을 지속시키는 데는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성’도 크게 한몫했다. 늑대는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늑대 무리는 우두머리 부부를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들 간에 상대적인 서열이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에게는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체계가 발달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매번 마주칠 때마다 ‘네가 강하다, 내가 강하다’를 놓고 피 터지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덕분에, 인간과 개는 상대방의 의사와 감정을 어느 정도나마 읽을 수 있었고, 늑대들의 의사소통법은 인간의 그 것에 익숙해지면서 보다 다양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 오늘날 강아지들이 생후 5-12주 무렵 사회화 시기(socialization period)를 거치듯, 그 옛날 인간에게 사로잡힌 새끼 늑대들도 이 시기를 인간과 함께 보내면서 자연스레 인간을 자신의 무리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먹이를 제공해 주는 인간에 대한 충성심은 야생에서 우두머리를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함께 사냥한 먹이를 나눠먹고, 신나게 뛰놀고, 같은 영역을 공유하고, 함께 주변 지역을 순찰하는 모든 생활이 늑대의 생활과 흡사했다.

이렇게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늑대는 야생의 늑대와는 전혀 다른 진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손쉽게 먹이를 얻게 된 길들여진 늑대의 이빨은 점점 무뎌지고 작아졌으며, 더 이상 자신의 영역과 먹이,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마침내, 드디어! 인간에게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자, “개”라는 이름의 가장 절친한 동물이 생겨났다. 이제 개는 인간을 향한 사랑에 눈이 멀어 자기 조상도 몰라볼 지경에 이르렀다(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늑대와 싸우는 개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까지 적어도 1만 2천년 째 이어져오고 있다. 이보다 질기고 진한 러브스토리가 또 있을까? 그 세월로만 따져 봐도 오늘날 개와 사람간의 사랑이 이해되고도 남음직 하다.

그러나 요즘 많은 개들이 인간에게 배신을 당한다. 버림받고도 버림받은 지 모를만큼 인간을 향한 사랑은 맹목적이다. “인간은 개에게 ‘남는’ 시간과 사랑을 주었지만, 개는 인간에게 ‘모든’ 삶과 사랑을 바쳤다. 유사 이래 인간이 성사시킨 거래 중 이보다 더 성공적인 거래가 있을까?”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말인데, 이 말 듣고 몇몇 사람들 양심의 가책 좀 받으라고 인용해 본다. 쩝. 정말이지, 우리 개들은 구멍 난 방석 위에서 자고,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먹어도 행복하다. 주인님의 사랑만 있다면 말이다. 그게 바로 우리 개다. 앞으로도 천년만년 인간과 개의 사랑이 더 짙어지길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주인님, 사랑해요! 왈왈~
 
<도그멍 소개>
사춘기 시절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똥개라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 다른 개들과 어울려 늦은 밤거리를 쏘다니며 방황하곤 했지만, 새로 만난 주인님의 사랑으로 개과천선해 잘 살고 있다. 그 시절 겪은 산전수전 덕분에 세상만사에 능통한대다 주인님의 사랑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은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이나, 인간과 개 세상에 일어나는 부조리를 볼 때면 한 마디씩 해야 직성이 풀린다.

200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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