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48 [칼럼니스트] 2007년 2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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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어디가고 문자만 남았는가

이재일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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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나 인척에게 안부를 묻거나 나의 뜻을 전하고자 할 때는 전화를 한다. 전화라는 게 없다면 우리는 엄청난 불편을 겪을 것이다. 전화는 인류의 100대 발명품에 속한다. 한 조사에서는 전화가 컴퓨터와 함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전화기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송화자나 수화자가 서로 대화하는데 있다. 그러나 최첨단 전화기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이 등장하고, 여기에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기능이 첨가되면서부터는 전화기의 본래 용도가 크게 달라져버렸다. 전화기로 말을 주고받기 보다는 글(문자)을 주고받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경우 전화기(電話機)라는 말이 썩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것은 신세대들만의 일이 아니다. 쉰세대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환갑이 넘은 필자의 고교 동기회도 2년 전부터 행사나 경조사를 알릴 때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다. 덕분에 일이 있을 때마다 오랜 시간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는 일은 없어졌다.

1970년대 히트곡 중에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는 “하루 종일 번호판과 씨름했었네”라는 가사가 나온다. 전화기의 번호판을 돌리느라고 무척 애를 썼다는 뜻이다. 그때는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번호판을 돌려야 했으니 씨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하겠다.

지금이라면 설사 상대방이 받지 않더라도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면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내가 보낸 내용을 읽을 것이기에 씨름을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하다보면 휴대폰이 참으로 편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자날리기는 첨단 통신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끽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니는 문자메시지는 얼마나 될까? 대략 2억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사용자수가 약 4천만명이므로 국민 한사람이 하루에 5건 정도의 문자를 날리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공공기관 등의 공지사항이나 스팸메시지를 빼더라도 최소한 4건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한 구직사이트가 20~50대 직장인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문자메시지 이용건수가 하루에 6.1건으로 음성통화(8.3건)에 근접하고 있다. 용도는 간단한 안부를 전할 때(28%), 전화로 말하기 어색할 때(24%),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공지사항을 알릴 때(21%), 전화통화가 어려울 때(15%) 등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확인된 것은 문자를 보내는 이유가 전화통화의 어려움보다는 다른 데 더 많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심심할 때라고 답한 사람도 9%나 됐을 정도로 휴대폰으로 문자보내기는 이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면 문자보내기가 음성통화보다 몇 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처럼 문자메시지를 즐겨 사용하다보니 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는 크게 줄었다. 옛날(?) 같으면 누가 보고 싶을 때 전화를 주고받았겠지만 요즘은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대체하는 사람들 훨씬 많아졌다. 바쁜 세상에 굳이 전화를 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을 빼앗기기보다는 간단히 안부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잊고 있던 사람이 문자를 보내오면 무척 반갑다. 그런데 문자를 받은 뒤가 문제이다. 문자로 답신을 해야 하는지, 통화를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번거로움을 피해 문자를 보냈는데 이쪽에서 그것도 모르고 전화를 건다면 그야말로 ‘결례’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한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전화 대신 e-메일로 안부를 묻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자메시지로 통하는 시대이다. e-메일은 무한대의 공간에다 자신의 생각을 부담 없이 쏟아놓을 있지만, 문자메시지는 그렇지 않다. 가급적 짧은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가 없다.

문자메시지가 아무리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음성통화가 안겨주는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들이 목소리 대신 문자로만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사회는 삭막하다 못해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문자날리기가 아무리 편리한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하고 유행인 마당에 이를 외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에만 매달리는 것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메시지는 고독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지만, 문자메시지 때문에 고독과 고립을 참을 수 없게 됐다.”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윤영민 교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0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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