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47 [칼럼니스트] 2007년 2월 1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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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점에 서서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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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정권 시절을 겪었던 중장년층 이상에게는 유신(維新)이라는 말이 지금도 뒷덜미를 잡는 고약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가끔 있을 것이다. 원래는 매우 좋은 뜻을 지닌 말이었는데 정치적으로 오염된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다 보니 천박해지고 '보호'라는 말이 사용자들의 오용에 의해 다른 뜻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이제는 낡은 헌옷처럼 누더기가 되었고, '보호'는 공권력에 의한 보호. 감시를 뜻하는 으스스한 말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유신'은 알다시피 시경 '대아 문왕편'의 '주수구방 기명유신(周雖舊邦 其命維新)'이라는 구절에 나온다. 고대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주나라가 폭정이 극에 달한 천자국 은나라를 치고 대신 천자국에 오름을 읊은 것으로 '주나라가 오래 전부터 있던 나라이지만 하늘의 명을 받아 새로운 천자국이 되었다'라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이 19세기 명치때 왕정복고를 이루면서 혁명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좀 미진하니까 이를 끌어다가 명치유신이라고 하며 근대국가의 기틀을 잡았는데,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이를 차용, 10월유신이라는 이름 아래 독재의 기반을 더욱 굳게 다진 것이다.

유신이라는 말은 그래서 70년대 이후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이나 '보호'처럼 오.남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아 언어대중이 다시 잘 사용하면 본래의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새 출발점에 선 우리들, 특히 돼지띠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각자 '정해유신(丁亥維新)' 추진에 나설 것을 권하고 싶다. 즉 지난해까지의 과거 속에서 버리고 싶은 것들은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유신'이라는 말도 본래의 좋은 모습을 되찾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새로운 출발을 한다. 그리고 해가 저물면 잠시 항구에 정박하여 그 성패를 계산해보며 다시 출항하는 것이다. 지난 해 성적에 따라 각자 각오와 다짐이 다르겠지만 점검하고 준비해야 할 사항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같을 수밖에 없다.

먼저 항해에 필요한 각 장비들의 결손 유무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의 능력과 에너지를 다각도로 조사하여 부족 분은 충분히 챙기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몸체는 예전과 다름이 없지만 이를 운영할 정신은 새롭게 하는 유신작업의 일차적 업무가 이것이다.

다음 여러 가지에 대한 가치관을 점검, 재조정할 필요가 발견되면 역시 과감히 취사선택하여 목표를 단순, 가능한 곳에 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아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아깝다며 함께 끼고 돌면 항시 바쁘기만 하지 남는 것이 없다. 항구 포구가 많다고 해서 이곳 저곳 다 들르면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인가. 발버둥만 치다가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가야 할 항구도 정하지 않은 채 남들이 출항하니까 덩달아 나서면 결과는 뻔하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곳에 능률적으로 가기 위한 항해도를 다시 꺼내 항로와 해류, 중간 기착지와 등대 분포 등 여러 사항들을 숙지하고 그 이용방법에 대한 솜씨와 기술을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관점과 생각을 재해석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냉정함이 곁들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해 경험했던 타성에 다시 빠지고 말 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해도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현실과 인간의 한계 등 여러 가지 불가결한 장애들이 지구의 중력처럼 잡아당기고 대기의 압력처럼 우리를 짓누른다.

모든 생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의 중력과 대기의 압력에 순응하고 그에 맞춰 진화해 왔다. 따라서 평소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그 한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고통이 따른다. 고산지대나 깊은 바다 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신체반응과 우주선의 궤도진입에서 우리는 그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의 혁신도 이것에 맞먹는 에너지와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고 상투적이고 안일한 태도로 유신을 하려 하면 마음먹은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자신을 엄밀하게 되돌아보고 조사해서 자신도 몰랐던 특징들을 재발견,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자기 능력을 스스로 무시하거나 방치하면서 새로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현실과 인간의 한계에 맞서거나 적정 선에서 적응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정해유신 과업의 성패는 바로 여기서 갈릴 것이다. 연말 성적표는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나 하나 만들어 가야 한다. 그걸 한 순간도 잊지 않으면서 꾸준히 나아가면 어느 날 바라던 목표가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 한국남부발전 '남전' 1,2월호(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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