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43 [칼럼니스트] 2007년 2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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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단상
박강문    (칼럼니스트, 대진대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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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시작이고, 시작은 대개 도전이나 모험을 동반하는 것인데, 도전이나 모험은 겁 많은 내게 친숙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치열한 삶의 열정이 없어 아쉬움이 많거니와, 겁쟁이인 내가 가장 겁낸 것은 겁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으므로 기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은 겁쟁이임을 감추려는 노력의 연속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생은 나날의 수많은 ‘출발’이 모여서 이루어지며, 꼭 긴장된 출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출발’ 이야기라면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력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00m 달리기의 출발신호 총소리는 어린 시절을 한참 벗어난 뒤까지도 자주 꿈 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운동회에서 100m 경기는 학생이 모두 한 차례 참가해야 하는 것이라서 몸이 허약한 나까지도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는데, 사력을 다해도 언제나 꼴찌였다. 내 자존심을 뭉개고 한없는 수치심을 맛보게 하는 출발신호 총소리를 나는 두려워하고 미워했다. 100m 달리기를 하지 않는 운동회는 없나, 운동회를 아예 하지 않는 학교는 없나, 이런 공상을 하면서 초등학교 시절 6년을 보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 악몽의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옛날 국민학교의 운동장은 좁고, 끝이 가물가물 멀리 느껴지던 100m도 아주 짧은 거리였다. 이처럼 삶에는 지내 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내 인생의 여러 출발 가운데 뚜렷하게 기억 속에 찍혀 있는 것 또 하나는 중학교 입학이다. 농촌의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도회지의 중학교에 가는 것은 겁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도시에서 살았는데도 농촌에서 6년 살면서 나는 완전히 시골뜨기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중학교 입학시험 보러 갔는데, 시험장에 입장할 때까지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혹시라도 부담감 때문에 긴장할까봐 조심하시는 것 같았다. 도시 출신 수험생들이 다 똑똑해 보이기만 해서 겁났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꾸몄다.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겁먹을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그 뒤 상급학교들 입학시험, 입영, 교생 실습 첫 시간 등등 모든 시작은 겁 많은 내게 공포였다. 특히 남 앞에 홀로 선다는 것은 이 날 이때까지도 항상 두려운 노릇이다. 내 나이 쉰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무렵에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앞줄에 서 계시던 당신의 자리에 이제는 내가 서게 된다는 것이었다. 뒷줄에만 서 왔던 내가 앞줄에 서는 시대가 시작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런 불안을 내내 감추고 지냈다.       

용기 있는 사람, 겁이 없는 사람은 존경스럽다. 용감성과 대담성은 내가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이기에 그렇다. 아주 사소한 경우에도, 이를테면, 지인들이 모인 노래방에서조차 나는 내내 불안하다. 이런 무대공포증을 비롯해서, 고소공포증, 어둠공포증, 대인공포증 등 공포증이란 공포증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살다 보니 나만 겁쟁이가 아니라 나처럼 겁 많거나 나보다 오히려 더 겁 많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유명한 연극배우가 자신도 무대에 오를 때마다 두렵다고 털어 놓았는데 놀랍기도 하지만 반갑기도 했다.  

 겁쟁이로 보이지 않으려고 나는 다이빙대의 가장 높은 데서 뛰어 내린 적이 있다. 수영 강사가 “자신 없는 사람은 제일 낮은 데서 해도 된다.”고 하는 말에 오기가 나서였다. 뛰어내리기는 했지만 엉망인 자세로 수면과 부딪히는 바람에 복부에 강습 기간 내내 파스를 덕지덕지 붙여야 했다. 군에서 소대장일 때는 소대원들이 귀신 나온다고 가지 않으려는 초소에 부러 혼자 가서 있다가 밤새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칠흑 같은 사방은 괴괴한데, 들은 이야기는 머릿속에 떠오르고, 짧은 여름밤이 어찌 그리 더디 새던지, 지금도 회상하면 머리카락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 때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두 명씩 그 초소에 나가도록 조치했다.    

용기는 용자만의 것일까. 용감한 사람은 정말 겁이 없었을까. 용기라는 것은 두려움에 저항하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남보다 용기가 없고 결단력이 없던 것은, 두려움이 많았기보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남보다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는 용기 있는 출발보다는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출발이 많았던 것 같다. 뒤늦게 깨친 것은, 불가피한 출발이라면 차라리 흔쾌히 나서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말은  “피할 수 없다면, 즐거이 맞이하라.”다. 그리하면 불안과 공포는 줄어든다.

출발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대개 낯익은 것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인 까닭도 있다. 시나 소설이나 영화나 대중가요는 애달픈 이별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대중가요에서, 이별의 무대는 기차 정거장이나 공항이나 항구여야 하고, 그 때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해야 하며, 갈매기나 기적은 슬피 울어야만 한다. 굳어진 습관 따위를 떨쳐야 하는 출발도 어렵고 때로 두렵기야 하지만 대중가요의 그런 이별처럼 슬픈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불가피한 출발, 도전과 모험이 필요한 출발, 긴장감 있는 출발, 슬픈 출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드는 출발, 즐거움과 기대가 있는 출발, 가벼운 마음의 출발이 실은 훨씬 더 많다. 종점은 또 다른 시점이 된다. 삶의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시작되어 인생은 새로운 출발을 맞는다. 젊은 시절에는 젊은 시절대로, 노년에는 노년대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곧 3세를 보게 되는데, 손주 자랑 너무 하지 말라고 핀잔주던 내가 아무래도 그 핀잔을 도로 받게 될 성싶다.

겁만 많던 나도 이제는 삶에 겁을 덜 내고 있다. 나이 덕분에 욕심과 억지가 줄어서일 것이다. 또 새해를 맞게 된다. 나는 한 해의 시작을 맞을 때마다, 또 한 번의 즐거운 출발, 시원한 탈출이 될 것이라고 그저 막연히 기대한다. 그 기대가 나중에 물거품이 되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 '바른 조달' 2007 신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