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37 [칼럼니스트] 2007년 1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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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사랑에 운다
김소희
http://columnist.org/animalpark


사랑은 가장 달콤한 기쁨이자, 가장 처절한 슬픔이다. - P.J. 베일리-

‘아부지, 가슴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여주인공 삼순이가 실연의 아픔을 하소연하던 중 했던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지 않던가? 한 번, 두 번, 세 번. 사랑의 생채기에도 더께가 쌓여 무뎌질 법도 하거늘 매번 통증이 재발하고 견디기 버거울 만큼 가슴이 시려올 때면, 차라리 마음이란 것을 도려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가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에너지’라 했듯이, 사랑은 내 몸을 새털로 바꾸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게도 하지만, 가슴 속에 날카로운 송곳들을 가득 채워 시도 때도 없이 나뒹굴게도 하는 것 같다. 동물들의 세상은 어떨까? 동물도 사랑을 잃으면 아파하고 그 사랑을 그리워하기도 할까?

사람들은 흔히 엉큼한 바람둥이 남자들을 일컬어 ‘늑대 같은 놈’이라 부르곤 하는데, 늑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질 노릇이다. 사실 늑대 수컷은 평생 일부일처의 신의를 지키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가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연학자 어니스트 톰슨 시튼의 첫 책에 등장하는 늑대왕 로보와 그의 아내 블랑카의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몇 년째 농장의 가축들을 약탈하며 악명을 떨치고 있던 로보 일당을 잡기 위해 온갖 종류의 덫과 독약 심지어 폭약까지 동원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은, 우두머리 부부인 로보와 블랑카의 사랑을 이용해 늑대무리를 소탕하기로 결심했다. 로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블랑카가 덫에 걸리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블랑카의 목과 뒷발에 밧줄을 멘 후 말들로 하여금 양방향에서 끌게 했고, 블랑카는 피를 토하며 갈갈이 찢겨 죽고 말았다. 시튼의 말에 따르면, 그 때부터 어디선가 끊임없이 로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너무 슬퍼서 듣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블랑카의 시체 주변에 130개나 되는 강철 덫을 설치한 뒤, 블랑카의 발 하나를 잘라 덫을 설치한 곳에 발자국을 찍고 시체를 끌고 다녀 그 주변에 냄새가 배게 했다. 수년간 온갖 종류의 덫을 피해왔던 로보였지만, 결국 이틀 뒤 로보는 블랑카의 발자국이 찍혀있던 덫들 중 하나로 걸어 들어와 잔인한 죽음을 맞고 말았다. 덫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리고 블랑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로보는 그 곳을 찾아갔던 것일까?

한 학자가 필름에 담은 고래의 사랑이야기도 애잔하다. 어느 날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수컷 고래의 시체를 발견한 연구팀이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배를 세웠다. 그 시체 옆에는 암컷 고래 한 마리가 더 있었는데, 그녀는 반복해서 수면 위로 시체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이 행동은 산고로 지쳐있는 어미 고래가 숨을 쉬게끔(가끔 사람들은 고래도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포유동물임을 잊곤 한다) 산파 역할을 자청하는 동료들이 취하는 행동인 동시에 어미 고래가 갓 태어난 새끼에게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암컷은 가슴 지느러미로 죽은 수컷을 껴안은 채 수면으로 밀어 올리길 5시간 이상을 되풀이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학자들은 그 필름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다.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알고 애정을 쏟는 새들의 각인 행동을 규명해 1973년 노벨상을 수상한 동물행동학의 선구자, 콘라트 로렌츠는 “회색기러기도 인간처럼 슬픔을 느낀다” 라며, 여러 저서를 통해 관련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 중에 하나를 꼽자면, 아도와 수잔네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어느 날 둥지로 돌아와 여우에게 반쯤 뜯어 먹힌 채 죽어있는 아내 수잔네를 발견한 아도는 그 옆에 힘없이 서 있거나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 한없이 시체를 바라보았으며 밥도 전혀 먹지 않았다. 덕분에 아도는 오랫동안 지켜오던 서열 1위 자리도 빼앗긴 채 최하위 계급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1년 이상을 슬픔 속에 살았다.”

인간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서슴지 않고 ‘위대한 사랑’ 혹은 ‘잃어버린 사랑으로 인한 크나큰 슬픔’이라 표현하지 않던가? 이런 동물판 ‘러브 스토리’는 쉼 없이 세상에 등장하고 있으며, 덩달아 동물도 인간처럼 사랑에 빠지고 심지어 첫 눈에 반하기도 하며 동물도 기쁨, 즐거움은 물론 슬픔과 고통, 외로움 같은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학자들도 줄을 잇고 있다. 늑대 로보, 이름 모를 고래, 회색기러기 아도. 잃어버린 사랑에 아파하는 동물들이라, 그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지?

(현대수필 2006년 60호 수필가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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