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98 [칼럼니스트] 2006년 7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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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 위의 환호성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animalpark@korea.com,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www.animalpark.pe.kr
http://columnist.org/ref/2006/060701-1298zy.htm



“으악! 누구야! 자동차 도어 고장났으니 안에서 잠그지 말랬쟎아!”
춥다며 코트를 꺼내러 간 친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아뿔싸!’ 순간 얼굴이 노래진 친구들이 허둥지둥 뛰어와 각자의 좌석 쪽 문을 당겨보았지만 꿈쩍도 하질 않았다. 자동차 열쇠, 겨울 외투, 지갑과 핸드폰이 들어있는 가방들은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그야말로 가깝고도 먼 당신이 되어있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오랜만에 여고시절 사총사가 모여 겨울 철새 탐조 여행을 떠난 터였다. 사방이 확 트인 바다를 가로지르는 천수만 방조제로 접어드니, 여고시절 그 때 마냥 너나 할 것 없이 연발해 대는 각종 감탄사 덕에 차 안은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간이매점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차를 세운 채 주변 비경에 취해있던 중, 다리 한 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 우리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열애 중인지라 핸드폰을 분신처럼 다루던 친구 덕에 서비스센터에 연락할 수 있었지만, 휴일인데다 너무 외진 곳이라 빨라야 1시간 반 이상 걸린다는 우울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 곳에서 긴 시간 매서운 바닷바람을 어찌 견딜 것인가?  

불과 몇 분 전과 너무나 상반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좀 피해볼 요량으로 나란히 매점 벽에 붙어 있자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짭쪼롬한 오뎅 국물 냄새가 콧털을 붙잡고 늘어졌다. ‘저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면 추위가 좀 가실텐데.’ 하지만, 지갑이 모두 차 안에 있는 터라 당장 10원짜리 한 푼도 없는 처지였다. 왠지 더 춥고 더 배고프게 느껴지는데다, 오만가지 상념까지 떠올라 우리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애꿎은 땅바닥만 째려보며 처마 아래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가씨 네 명의 사연이 궁금했는지, 매점 아저씨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 오셨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손님이 뜸해지면 봐주겠노라며 잠깐 기다려 보라셨다. 어찌나 고맙고 반갑던지! 그런데, 웬 걸. 방조제를 달리던 대부분의 차량들이 우리처럼 매점 앞에 차를 세우고 운전을 쉬어가는 터라 손님이 끊일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속으로 애만 태우고 있었더니, “아이고, 오늘따라 손님이 왜 이리 많누. 아가씨, 여 들어와서 가게 좀 봐요.”
“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인지라 쑥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그리하여 재미있는 장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당신의 출퇴근용 트럭에서 찾은 거대한 철사줄을 들고 차에 붙은 채 이리저리 땀을 흘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든 여행객들은 이래라 저래라 한 마디씩 참견하느라 아우성이고, 한 친구는 매점 안에 들어가 ‘네, 어서오세요. 뭐 드릴까요.’를 외치며 삶은 달걀이며 커피를 팔고, 또 다른 친구들은 밖에서 ‘한 꼬치에 500원입니다’를 반복하며 열심히 손님들에게 오뎅 국물을 따라주고.

그렇게 열심히 장사 삼매경에 빠져 있노라니 잠시 후, 차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차 문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철사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멋쩍게 웃으시는 아저씨를 가운데 두고, 우리들은 물론, 구경 중이던 생면부지의 여행객들까지 신나라 환호성을 질러댔다. 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월드컵이라도 하나 싶었을 정도였다.

몇 번이고 아저씨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린 우리는 매점을 다시 아저씨께 넘긴(?) 후, 의기양양 차 안에서 지갑을 꺼내들고 배불리 오뎅이며 뜨거운 커피를 사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또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어찌나 따스해지던지.

지금도 그 친구들과 만나면 일명 ‘방조제 좌초 무용담’ 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둥, 그러게 미리미리 자동차 점검 잘 해두라는 둥, 여전히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둥, 멋쟁이 아저씨 보러 다시 가자는 둥, 수다를 떠느라 말이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 덕에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된 것 같아 생각하면 늘 감사하다.  아저씨 건강하시죠?

- 지엠대우 5,6월호 사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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