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93 ]칼럼니스트[ 2006년 6월 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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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들이여! 애국가를 불러다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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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밤, 우리나라와 토고간의 월드컵 1차전이 벌어지기 전 애국가가 두 번 울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런 일은 지극히 보기 드문 경우여서 그라운드에 서 있던 선수들은 물론 관중석을 꽉 메운 관중들과 TV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우리야 기분이 크게 나쁘진 않았지만 한국의 애국가가 또 한번 연주되었을 때 토고 선수들과 국민들은니 얼마나 언짢은 기분이었을까.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주최 측이 한국과 토고 관계자들에게 정중한 사과를 했는지가 궁금하다.

각국의 국가(國歌)는 국기(國旗)와 함께 그 나라를 상징하고 있다. 누구나 국가(또는 애국가)를 들으면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외국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을 뭉클해지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애국가가 응원가로 편곡되어 불리고 있다. 이동통신회사에서 기획한 것으로 TV광고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애국가가 상업주의에 훼손되었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애국가는 정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다시 지난 10일 새벽, 월드컵 개막경기인 독일-코스타리가戰이 벌어지던 때의 일을 생각해보자. 경기 직전 양국의 국가가 차례로 울려 퍼졌다. 두 나라 선수들은 자국의 국가가 연주되자 두 눈을 국기로 향한 채 결의에 찬 표정으로 따라 불렀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만이 아니라 벤치에 있는 감독과 코치, 후보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관중석에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도 국가를 합창했다. “자기 나라 국가가 연주되는데 이를 부르는 게 뭐 대수냐”고 물을 사람이 있겠지만, 필자에겐 대수로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이번에 그로부터 사흘 뒤에 벌어진 한국-토고戰에서는 어땠는가. 먼저 한국의 애국가가 울렸으나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의 입은 꾹 다문 채였다. 대부분 오른 손을 가슴에 얹고 있거나 기도를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이와는 달리 관중석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붉은 악마’들은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다.

토고선수들은 우리와 좀 달랐다. ‘토고의 영웅’ 아데바요르를 비롯해 절반 정도가 비장한 표정으로 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우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벤치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관중석의 토고 응원단은 그래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12일 밤 호주-일본戰이 벌어졌을 때는 어땠을까. 두 나라 선수들은 당연히(?) 국가를 불렀다. 특히 ‘기미가요’를 부르는 일본선수들의 표정은 너무 심각해서 마치 출격을 앞둔 카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섬뜩했다. 축구경기가 ‘전쟁’이 아닐 텐데도 그들의 모습은 그랬다.

국가가 연주될 때 따라 부르지 않는 선수들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대부분의 선수가 프랑스 국가를 부르지도 못한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프랑스령 또는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이거나 이민 2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월드컵 축구대회와 같은 나라 간의 경기가 벌어질 때면 반드시 국가가 연주된다. 일부 나라의 국가는 노래로 부르기는 좀 어렵다싶을 정도로 매우 빠르거나, 아니면 아주 클래시컬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따라 부르기 좋은 곡조와 속도로 되어 있다.

경기 시작 전 운동장에 서있는 선수들이 자기나라 국가를 부르는 것은 조국의 명예를 생각하며 필승의 의지를 다지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은 왜 가만히 있을까? 어쩌다가 애국가를 부르는 선수가 있지만 입만 중얼거리는 수준이다. 필자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우리들이 애국가 부르기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볼 수 있다. 우선 군사정부 시절, 거의 강제적으로 애국가를 부르다보니 그에 대한 반발심이 침묵(?)하는 것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의 의미를 띤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음으로는 가사가 현실적이지 못하고 곡조가 너무 장중한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든가,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는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가사에서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자”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애국가를 잘 부르지 않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국가대표선수들이 애국가가 연주되는 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그냥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국제경기 때 상대나라 선수와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이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지는 것은 필자만의 일일까.

우리는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서 있는 가운데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다. 이처럼 애국가는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것이다.

애국가는 그저 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필요할 땐 누구든 언제라도 부르는 애국가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전사들이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에서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0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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