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84 ]칼럼니스트[ 2006년 5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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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넷맹' 퇴치에 앞장서야 할 노티즌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꼭 1년6개월 전, 필자는 ‘늙은 동기회에 부는 디지털바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이 칼럼은 모교 총동창회 회보에도 기고했는데 반응이 제법 좋았었다. 환갑 전후의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동기회홈페이지를 만들고 경조사 때는 모든 동기생들에게 문자메시지까지 보내는데 대한 놀라움과 부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모교(경남고)는 올해 제60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많은 기수가 자체적으로 동기회 홈페이지를 갖고 있지만 50대 이상의 기수들은 그렇지를 못하다. 애써 만들어도 이용자가 적은데다 관리도 쉽지 않아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다.

우리 동기회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2003년 10월 홈페이지를 개설한 이후 방문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점차 다양하고 아기자기해져가고 있다. 항목을 보면 공지사항, 경조사, 회원동정, 자유게시판, 수다게시판, 행사앨범, 추억앨범, 방명록, 자료실, 회원명단, 각 지역동기회 소식, 회비납부자 명단 등으로 웬만한 것은 다 있다.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들이 손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운영은 몰론 홈페이지 개선작업도 스스로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행히도 동기생 중에 컴퓨터도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호강(?)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필자가 신문기자 출신이어서 동기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기사로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므로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사이버 동기회보’인 셈이다. 초창기에는 필자 혼자서 사진을 찍었지만, 2년 전 컴퓨터도사가 고급 디카를 사서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홈페이지 내용이 더욱 근사해졌다.

이런 동기회 홈페이지에 며칠 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승을 먼저 떠난 친구들의 명복을 비는 ‘사이버빈소’가 마련된 것이다. ‘늙은 동기회’가 홈페이지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인데, 사이버빈소까지 차리다니 이는 분명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사이버빈소가 세워진 데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살고 있던 친구 한명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을 거두었는데 빈소가 워낙 멀어 필자를 비롯한 부산의 많은 친구들이 문상을 갈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친구는 모든 동기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터여서 안타까움은 더 컸다.

그러자 몇몇 동기생들이 “동기회 홈페이지에 사이버빈소를 차려 그곳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컴퓨터도사는 즉각 작업을 벌였고, 지난 4월15일 마침내 ‘하늘나라 우체국’의 문이 열렸다. 컴퓨터도사는 다음과 같은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우리들의 친구들이 하나 둘 이승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먼저 가신 친구들을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 마당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동기회 홈페이지에 ‘하늘나라 우체국’을 만들었습니다. 사이버빈소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에 들러 먼저 떠난 친구와 못 다한 우정을 다시 한번 새겨 보십시다.』

그렇다. 올해 들어서만도 먼저 떠난 친구가 5~6명에 이른다. 환갑을 넘어서면서부터 불귀의 객이 되는 친구들이 이처럼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사이버빈소를 만들어 생각날 때마다 들러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이승에 남은 우리들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필자는 곧 바로 사이버빈소를 찾았다. 지난 1월 타계한 친구의 빈소가 있었다. 부인과 함께 여행 갔다가 찍은 사진이 보였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늘 함께 등산하고 바둑도 두던 친구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방명록에다 “지금은 하늘에 있는 너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핑 도는구나. 너무도 착한 친구였는데, 무엇이 바빠서 먼저 우리 곁을 떠났는가. 하느님은 또 왜 너처럼 착한 사람만 데려가시는지…. 부디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서 편안히 새로운 삶을 누리시게.”라고 썼다.

며칠 뒤에는 서울에서 숨진 친구의 사이버빈소도 세워졌다. 친구의 명복을 빌면서 방명록에다 “빈소도 못 가보고…. 면목이 없구나. 늦게나마 이곳에서 너의 명복을 빌어본다. 친구를 사랑하고 술을 좋아했고 언제나 올바른 말을 했던 자네. 그랬던 자네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라고 썼다. 그러고 나니 마음에 남아있던 부담감이 한결 덜어졌다.

이 나이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면서도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넷맹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고인이 되어버린 친구들의 사이버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것만도 큰 복(福임)에는 틀림없다.

요즘은 e-메일을 주고받는 정도를 뛰어넘어 디카로 찍은 사진은 물론 음악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60~70대의 노티즌들도 많다. 이들이 앞장서서 아직도 넷맹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재미있고 유익하면서도 멋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서울칼럼니스트모임 http://columni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