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80 ]칼럼니스트[ 2006년 5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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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을 가진 '미친 기계' 휴대폰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20대 5명이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가족의 신고로 '휴대폰 위치추적'에 나선 경찰과 119구조대에 의해 발견됐다.” “휴대폰 전자파가 자동차 운전시를 포함해 순간적인 판단을 내려야할 때 장애를 조성할 수 있는 것으로 호주에서 실시된 연구에서 나타났다.”

“내달부터 폭설, 태풍, 테러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휴대폰으로 사고를 알리고 현장을 촬영해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 "최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5월5일 어린이날에 받고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휴대폰이 선정됐다.”

“서울 서북부 연쇄 성폭행 용의자, 휴대폰 추적한 끝에 검거에 성공했다.” “충북지역 중·고교생 가운데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하다’는 응답자가 59%에 달해 휴대전화 중독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위에 열거한 예문은 최근 신문에 보도된 기사내용이다. 가만히 읽어보면 휴대폰이 마치 양날을 가진 칼과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경우에 따라 좋은 결과를 갖다 주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얼굴’을 가진 휴대폰은 너무 자주 우리를 분노케 하는가 하면 기쁘게 만들기도 한다.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휴대폰 때문에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휴대폰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휴대폰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생각나는 글이 있다. 시인 황지우가 5,6년 전 어느 신문에 쓴 칼럼인데, 제목이 「 미친 기계, 휴대폰」이었다. 그가 휴대폰을 ‘미친 기계’라고 한 것은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칫 미친 것 같아 보였던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을 잠깐 소개를 해본다.

『인적이 뜸한 주택가 저편에서 웬 중년남자가 혼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미친 사람 같았다. 나는 그가 나에게 무슨 적의를 품고 있나 해서, 적이 방어적인 자세로 그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중략)

무슨 외상값을 당장 갚으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지면에 인용할 수도 없는, 생식기와 관련된 욕설을 잔뜩 퍼부어 대고 있었다. 나는 짐짓 그가 두려워, 그가 지나갈 때까지 길 한쪽에 서 있었다. 그가 내 옆으로 스쳐갈 때에야 그의 왼쪽 귀에 그의 두툼한 주먹이 쥔 휴대폰이 붙어 있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시인 황지우가 이런 글을 쓴 것을 보면 밤중의 길거리에서 휴대폰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다. 만약 미셸 푸코(1984년 사망)가 살아서《광기의 역사(1961)》 속편을 쓴다면 분명히 ‘휴대폰’얘기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이 글의 뒤편에 가서 “이동통신 보급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엔 '게나 고둥이나'이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이 미친 기계들을 호주머니에 휴대하고 다닌다. 요는 나도 그렇다는 거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대세에 반항하고 반항하다가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고 실토하고 있다. 거대한 물결을 그슬릴 수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휴대폰 때문에 충격적인 일도 이따금 벌어진다. 지금부터 꼭 6년 전인 2000년 5월15일 ‘스승의 날’에 일어난 일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를 본 선생님이 학생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여기에서 사건(?)이 터졌다.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고 있다”고 112신고를 한 것이다. 인근 파출소에서 경찰관 2명이 출동해 교사와 학생을 상대로 경위조사를 벌인 뒤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읽고 “학생이 선생님을 폭력범으로 신고를 하다니…”라는 생각에 분노가 한없이 치밀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학교 선생님들은 얼마나 당황했으며, 이를 지켜본 학생들 또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런 경우는 휴대폰이 초래한 ‘비극’이었다고 하겠다.

휴대폰으로 빚어지는 부작용은 참으로 많다. 학생들이 휴대폰을 너무 많이 써서 중독증세에 빠진다거나 지나친 사용으로 통신요금 부담이 너무 커지는 것 등이 그렇다. 전자파에 따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휴대폰 때문에 흐뭇한 일도 자주 일어난다. 휴대폰 위치를 추적함으로써 등반 중에 실종된 사람을 찾아내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범인을 검거하기도 한다. 휴대폰으로 주식을 사고, 결재를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닐 만큼 휴대폰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휴대폰에 부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보통신시대에 휴대폰의 편리성과 필요성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만큼 휴대폰으로 발생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힘쓰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수백만년 동안 이 지구를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인간만이 갖고 있는 지혜로 해결해왔다. 오늘날의 휴대폰이 다소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우리들이 노력만 한다면 결국에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2006.05.0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http://columni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