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79 ]칼럼니스트[ 2006년 5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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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기 : 금괴 무덤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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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의 미륵사는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라 불리던 거대 사찰이었다. 이렇던 절이 언제부턴가 부서진 탑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 폐허로 변했다. 폐허가 된 사유가 '금괴 무덤' 설화로 전해 내려온다.

팔만하고도 구암자니 중들 역시 셀 수 없이 많았음은 당연지사, 문제는 이 중들의 행패가 보통 심한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절 앞을 마음 놓고 지나다닐 수조차 없었던 것. 이를 보다 못해 한 지사(地師)가 방책을 내놨다.
미륵사의 지형은 노서하전지형(老鼠下田之形)이라, 늙은 쥐[老鼠]란 놈이 한달 중 앞 보름은 미륵사가 있는 노상리(路上里)에서 먹고, 뒤 보름은 거기서 시오리쯤 떨어진 오상리(五相里)로 가서 먹는다. 이런 습성이니 노서를 견제하려면 쥐가 나 다니는 길목에 금으로 고양이를 만들어 묻어 놓으라는 것. 사람들이 이 방책대로 하니 그 후로 미륵사를 비롯한 그 많던 절들이 모두 시름시름 망해가고 따라서 중들의 행패도 자연히 사라졌다 한다.

이 미륵사를 백제 무왕(재위 기간; A.D.600-641)이 세웠는데, 지난 1980년부터 96년까지 한 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했다. 면적 2천4백여평에 목탑, 석탑, 금당, 경당, 강당, 승방, 회랑 따위를 좌우 쌍으로 세웠음이 밝혀졌다. 이 건물들을 대충 복원하는 데만도 약 1천억원의 자금이 소요된다고 하니, 변변한 산업도 없이 입에 풀칠하기조차 바빴던 삼국 시대에는 얼마나 큰 건축 공사였었나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공사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엄청난 노동력과 막대한 재화를 제공해야 했던 일반 백성들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 미륵사뿐 아니라 무왕은 6만5천여평의 왕궁도 익산에 세웠었다. 왕궁 역시 철저히 파괴돼 이미 오래 전부터 무슨 용도로 사용되던 곳이었는지조차 사람들이 몰랐었다. 최근에 건물 터를 발굴해 보고서야 그 곳이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같은 별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화에서, 늙은 쥐가 노상리와 오상리로 왔다갔다 하며 먹고 살았다는 뜻은, 멀쩡한 서울 부여를 놔 두고 무왕이 익산 별궁을 건설한 것을 풍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손바닥만한 한반도에서는 수도가 곧 국가다. 수도를 이전한다는 것은 국가가 멸망했다 또는 멸망 중이란 뜻이다. 익산에 벌인 대규모 토목공사가 백제 무너뜨리기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 백제인들의 분노가 금괴 무덤 설화에 실려 있다.

백제 멸망하면 보통들 의자왕만을 떠올린다. 그런데 실상은 의자왕 못지 않게 그 애비 무왕에게도 백제 멸망의 책임이 크다. 이 결론을 위의 설화가 입증하는데, 그 뚜렷한 표시가 응징의 대상으로 '늙은 쥐'를 설정한 것이다. 물론 풍수지리설을 빌어 미륵사의 흥망성쇠를 풀이하다 보니 쥐가 자연스럽게 등장했겠지만, 이 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의도적으로 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무왕의 어릴 쩍 이름이 서동(薯童; 마 파는 아이)이다. 이 이름을 음만 같고 뜻은 전혀 다른 욕지거리 서동(鼠童; 쥐새끼)으로 변환시켜 무왕에 대한 분노를 백제인 또는 그 후손들이 표출한 것이다.

삼국유사를 찬찬히 읽어 보면, 무왕은 정말 '쥐새끼' 같은 행동을 한다. 그는 출신부터 제갈씬지 윤씬지 김씬지 불분명하다. 전왕인 법왕(法王)의 자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왕족도 아니다. 그런데도 왕이 됐는데, 삼국유사에는 '그의 어머니가 못 속의 용과 상관하여 서동을 낳고', 그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을 아내로 삼고' 진평왕이 '늘상 보내던 안부 편지 덕분에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得人心卽王位)는 것이다.

아리숭한 것은, 아무리 '죄를 지어 먼 지방으로 귀양가던 공주'였지만, 그 공주가 신원 불명의 젊은이를 따라 적국인 백제로 갈 수 있는가? 이 선화공주는 진짜 공주라기보다, 신라가 백제에 심어 넣은 고정 간첩이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왜냐 하면 통신 수단이나 매스컴이 미개하던 고대에 는 사람을 바꿔치기하여 다른 나라로 보내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서동이란 인물도 마찬가지다. 천민이었던 (마 파는 아이)가 -->(용의 자식) -->(왕의 사위) -->(왕) --->(미륵)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 신분이 화려하게 비약을 한다. 사기나 의도적인 연출 냄새가 짙다.

적국 공주를 아내로 데려오고, 적국 왕이 늘상(常)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던 서동이야말로 지긋지긋한 전쟁에 시달리던 백제인들이 볼 땐 자기들의 목숨을 지켜 줄 진정한 평화의 메시아며, 지도자 '슨상님'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得人心하고는, 왕이 되기 위해 서동은 신라에 '퍼주기'를 한다.

그의 마 밭에 있던 금을 끌어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용화산 지명법사에게 신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지명법사는 귀신의 힘을 빌어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궐로 금을 날라다 준다. 누가 지금 내둥 잘 타고 다니던 비행기는 마다 하고 굳이 열차를 타고 고구려 서울로 가겠다고 우긴다. 지금은 지명법사가 없으니 귀신은 못 부르고, 열차가 그래도 제일 안전하겠지비?

설화 '금괴 무덤'의 '괴'는 '고양이'의 준말인데, '금'도 괜히 그냥 붙인 것이 아니고 서동이 퍼주기 한 이 '금'을 말한다. 그리고 마 밭에 웬 산더미 같은 금인가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후 시간만 약간 융통성있게 조종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즉 서동이 왕에 올라 익산에 미륵사와 왕궁을 지을 때는 백제 전 지역의 재화 곧 '금'이 온통 서동의 마 밭에 모아져 쌓였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백제 시대를 통틀어 무왕만큼 신라를 집요하게 공격한 왕이 없다. 40여년 동안 왕 노릇하며 무려 12번이나 침공한 것이다. 신라 공주를 왕비로 삼고 신라의 힘으로 왕이 됐다면 누가 보든 그에겐 신라가 은인 나라인데 외려 다른 왕들보다 더 집요하게 신라를 공격하다니, 이게 과연 정상적인 행동인가? 여기서 무왕이 '쥐새끼'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때리기는 분명히 신라를 때렸으나 골병이 들어 죽게 된 것은 백제였다. 무모하고 집요한 신라 침공으로 백제의 국력이 피폐되고 민심은 흉흉해지고 불필요하게 신라인들의 적개심만 부추기고 따라서 국가가 백척간두에 올라앉게 됐다.

실제로 무왕이 왕위에서 물러난 후 단 20여년만에 7백년 역사의 백제가 비참하게 망했다. 그 후 지금껏 1천년 훨씬 넘게 '백제의 슬픔'이 계속됐다.
지금 또 꼭 같은 패턴으로 '한국의 슬픔'이 재현되고 있다. 이 슬픔을 막는 방책은 한 가지밖에 없다. 쥐새끼들이 들락거리는 열차길 아래 쥐새끼를 잡아죽여 파묻는 것뿐이다. 신이시여, 도와 주소서.....(계속)

- 20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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