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74 ]칼럼니스트[ 2006년 4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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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총리가 해야 할 일

임영숙 (서울신문 논설고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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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여자가 되고 싶은가, 남자가 되고 싶은가? 전직 남성 총리에게 50대의 여성국회의원이 물었다. 대답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였다. 의외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그 여성국회의원은 “다시 태어나도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 했던 70대의 전직 여성 고위공무원은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총리가 된 한명숙 총리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 “다시 태어나도 여성이 되고 싶다.”가 아닐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가 총리가 됐다는 세간의 일부 비아냥 때문이 아니다. 지난 80∼90년대 재야여성계의 대모로 불렸고 여성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는데서 그의 안정감 있는 이미지와 부드러운 리더십, 여성적 리더십이 만들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역설적으로 갖게 되는 이점이 하나 있다. 잘 나가는 남성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을 돌아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대한 관심과 사려 깊음은 모성과 일맥상통하며 부드러운 여성적 리더십을 구성한다.

한 총리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게 된다면 그는 성공한 총리가 될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밀어붙이기 리더십과는 다른 화합과 포용의 리더십, 대화와 조정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리더십을 지금 우리 사회는 바라고 있다. 날카로운 대립과 갈등에 온 국민이 지쳐있는 것이다.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명감을 공유하고 “우리가 해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 점에서 총리의 취임식 발언은 기대를 갖게 한다. “민생현장을 찾아 지친 이들의 손을 감싸드리는 민생총리가 되겠다. 파인 골을 메우고, 상처 난 곳을 어루만지고, 등지고 돌아선 사람들의 손을 맞잡게 하겠다.”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힘과 에너지는 오직 우리 국민 속에 있다. 국민 속에 잠재해 있는 무궁무진한 지하수와 같은 에너지, 저력, 잠재력을 살려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말 보다는 실천이 문제이다. 벌써부터 여성총리의 부드러운 리더십만으로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확고한 신뢰를 주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이런 걱정을 사라지게 하려면 한 총리는 시급히 국정 현안을 파악하고 조정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실무자를 압도할 정도로 국정을 소상히 파악했던 전임 이해찬 총리가 치밀한 업무 인수인계을 통해 새 총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총리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새 총리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여성총리 지명이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올라갔다는 여론조사 결과의 뜻을 청와대는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새 총리가 정치적 총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분권형 총리, 일하는 책임총리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총리의 역할은 그의 능력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신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국정 후반기에 접어든 이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기 보다는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이 새 총리가 떠안은 과제이다. 그러나 여성총리는 정치문화 뿐만 아니라 경제구조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주력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면서 여성이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어가는 ‘우머노믹스’시대가 오고 있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분석했다. 국가경쟁력 1위 자리를 몇 년 째 고수하고 있는 핀란드는 여성 대통령이 연임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른바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 시급한 국정현안을 풀어나가는데도 이런 흐름을 읽고 현실에 접목해 나가야 한다.

한 총리가 무엇보다 지켜야 할 덕목은 사심 없이 원칙과 소신에 따라 정도를 걷는 것이다.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총리직 수행에 있어 중요한 핵심은 상식적 판단과 균형감각”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힐 때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데서 파국이 빚어진다. 여당이나 청와대가 그런 함정에 빠질 때 한 총리는 분명하게 “아니다.”고 말해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엄정하게 관리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한명숙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4·19 혁명 기념일이었다. 그가 업무를 시작한 날은 씨 뿌리는 날인 곡우이자 장애인의 날이었다. 대한민국 첫 여성총리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연의 일치이다.

여성총리의 등장은 우리 정치에서 지연과 학연, 술자리와 골프로 이어지는 남성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며 소외된 사람들과 그늘진 곳에 변화가 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 총리는 그 역사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성과 열린우리당을 넘어서 국민의 총리로서 성공해야 한다.

- 서울신문 200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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