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73 ]칼럼니스트[ 2006년 4월 1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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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언론사가 '떡값' 주었던 기상청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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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황사 테러'…한국의 주말을 파괴했다」 중앙일보 오늘(10일) 신문의 1면 톱기사 제목이다. 신문 상단 왼쪽에서 오른쪽까지를 통째로 장식한 제목도 자극적이지만 사진 역시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부제목도 서슬(?)이 퍼럴 정도이다. 「기상청 뒷북 예보 ‘놀토 주말’ 무방비로 당해」, 「중국발 먼지폭탄…공세적인 '협조 외교' 필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황사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기상청의 태도를 가차 없이 나무라고 있다.  

중앙일보는 4면에 이어 5면에도 전면에 걸쳐 관련기사를 싣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30면에서는 「엉터리 기상 예보로 황사 뒤집어쓴 국민」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기상청 때리기’의 마무리를 짓고 있다.

기상청의 뒷북예보 때문에 나들이를 망친 시민들이 기상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도 매우 따끔하다. 시민들은 "예보를 하는 기상청이 아니라 이미 지난 날씨를 기록하는 기록청"이라거나 "예보가 아니라 실시간 날씨 중계였다"며 기상청을 질타하고 있다.

일할 때나 놀 때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일기예보이다. 날씨에 따라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제조업체도 많다. 시민들 역시 날씨의 좋고 나쁨에 따라 휴일의 계획표가 달라진다. 그러니 잘못된 일기예보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신문과 방송에서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다”며 꾸짖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일기가 국가경제와 시민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엉터리 예보를 한 데 대해 나무라고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촉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만 해도 언론에서 기상청을 나무라는 일은 별로 없었다. 기상청이 일기예보를 정확하게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기상청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국과의 기상정보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를 뻔히 아는 언론으로서는 기상청이 실수를 좀 하더라도 너그러이 보아주는 것이 관례였다.

이보다 세월이 더 지난 1980년대까지는 거짓말 같은 일도 있었다. 신문사에서는 해마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기상대에 ‘떡값’을 선물했다. 그야말로 명절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먹을 떡’을 살 돈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문에 싣는 기상도를 만들어주는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어쨌든 언론사가 금품을 전달하는 관공서는 기상대가 유일했다.

당시 기상대야말로 ‘춥고 배고픈 관공서’였다.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명절을 앞두고 업자들이 선물을 싸들고 관공서에 들락거리는 것이 예사였다. ‘끝발’ 좋은 부처에서는 돈다발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기상대는 그게 아니었다.

공무원사회가 크게 맑아진 지금은 기상청이라고 해서 특별히 동정 받을 이유가 없어졌다. 이권(利權)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상청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울 수도 있다. 거기에다 일기예보만 정확하다면 이 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중앙일보가 오늘 신문에서 기상대를 사정없이 채찍질한 이유도 미워서가 아닐 것이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많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잘 하는 사랑의 채찍질로 알고 더욱 분발하는 기상청이 되길 기대해본다.

- <0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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