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72 ]칼럼니스트[ 2006년 4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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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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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우스개로 하느님과 착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남자가 좋은 일을 많이 하자 이를 가상하게 여긴 하느님이 어떻게든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소원을 한가지 말하라고 하니 한국에서 미국까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건설을 요구했다. 하느님은 한 마디로 거절했다. 아무리 하느님이라지만 그 공사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른 소원을 제시하면 무조건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여자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느님 표정은 처음보다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던 끝에 "이봐, 아까 말했던 고속도로 있지. 그걸로 하자. 4차선으로 할까  8차선으로 할까"하고 물었다. 버전에 따라서 고속도로 구간이나 지명은 다르지만 핵심은 하느님 자기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니 두 손을 번쩍 들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신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남자는 일생에 두 번 여자를 모른다. 한번은 결혼하기 전이고 다음은 결혼한 다음이다(그러니 평생 여자를 모를 수밖에)"라는 말처럼 남자가 여자를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어쩌자고 경솔하게 편집자의 청탁에 응했는지 자신의 우둔함과 사려 깊지 못함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소설가 같은 문인이라면 비유, 은유 등 문학적 수사를 동원해, 여자들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우리같은 비문인들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인데 멋모르고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편집자가 봄을 맞아 '여자 또는 여심'을 주제로 삼았다 하기에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또 한번 발등을 찧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의 마음을 말하는 남심(男心)이 혹 있나 하고 찾으니 짐작했던 대로 그런 말은 없고 여심(女心)은 당연히 있었는데 그 풀이가 여성들한테 돌팔매질 당하기 딱 좋게 되어 있다. 사전마다 풀이가 두 가지인데 ①은 여자의 마음 또는 여자의 특유한 마음이고 ②는 간사하고 중심이 없는 마음, 미묘하게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이라고 했다.

물론 여심이라고 하면 첫 번째 풀이에 근거하여 따스한 봄기운, 화사한 드레스, 은근하고 신비한 미소 같은 것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남성위주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여성을 규정해 온 횡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심은 없고 여심만 있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남자의 마음은 알려고 하지말고 죽은 듯이 따라야 한다는 과거의 인습이 그대로 녹아든 것이라는 풀이가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제 여성파워가 막강해진 터라 남자의 마음 같은 것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으니 군말  말고 무조건 여자 말에 따르라는 뜻이라며 익살을 부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남성위주사회의 폐습이 이같이 제도, 습관, 언어 등 곳곳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여자에 대한 정보가 왜곡과 편견, 오해 때문에 바르지 못할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는 그나마도 못 미쳐 여자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여성들한테 그런 지적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집에서 마누라와 딸한테까지 비슷한  공박을 당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소크라테스는 '내가 자신 있게 아는 것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뿐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감히 차용한다면 내가 유일하게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여자는 알 수 없다는 것' 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을 살만큼 살아서 이순(耳順. 예순. 사람과 세상의 이치를 웬만큼 알아 상대방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순조로운 나이라는 뜻)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들 대부분이 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과 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젊은이들이 여자를 모른다는 것은 다분히 낭만적, 감성적이며 애정 표현을 위한 수식어일  수  있지만, 나이 든 이들이 모른다는 뜻은 실생활에 바탕을 둔 것으로 매우 현실적인 사례가 많다.

남자가 모른다고 해서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남자는 비교적 단순하며, 의사 표현을 주로 눈과 표정에 의지한다. 반면 여자는 상대적으로 복잡한데다 말과 행동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은 이 차이의 강조일 뿐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라도 오랜 기간 전공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를텐데 여자에 대해서는 결혼해서 살면 살수록 모를 일이 더 많으니 답답할 노릇 아닌가.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인데 남녀간은 여기서부터 혼선을 빚는 것이다. 독일에서 남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여자들의 언어’를 해석한 사전이 나온 것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독일 여자/여자의 독일어(Deutsch-Frau / Frau-Deutsch)’라는 이 사전은 여자들이 하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속뜻을 풀이했다. 여자가 “오늘은 꼭 껴안고 자자”고 하면 남자들이 흔히 생각하듯 “섹스하자”가 아니라 “오늘은 정말 그냥 자자"는 뜻이고, 쇼핑하면서 “이 구두 좀 봐줄래”하면 사실은 "이 구두 사줄래”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또 '패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남자가 이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라며 익살을 부렸다.

이는 일종의 풍자사전이므로 정색을 할 것까지는 없다. 엮은이 바르트 역시 이 사전을 통해 여성을 조롱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고 했다. 사실상 서로 다른 언어의 세계에 사는 남성과 여성의 이해를 도모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도 아닌 같은 사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기초적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뭐든지 모르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불평과 비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상대방 특히 여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이래서 빚어진 것이 많다.

인간과 다른 동물간의 의사 소통에 관한 연구도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는데, 같은 인간인 남녀간의 의사전달에 문제가 많아서야 되겠는가. 따라서 어떤 외국어보다도 먼저 마스터해야 할 것이 남자는 여자의 언어요, 남자는 여자의 언어다. 그것이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한 의무요, 지름길이다. 속성상 성과는 더디겠지만 노력하는 한, 분명 진전은 있을 것이다. 여자언어뿐만 아니라 남자언어사전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하면 하느님도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 길이 열렸다고 좋아할 것이다.

-'바른조달' 봄호 (20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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