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71 ]칼럼니스트[ 2006년 4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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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누구에게든 물어야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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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어느 남자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약간 덜렁대지만 성격이 밝고 명랑해 급우들과 잘 어울리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에게 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학교가 끝난 뒤 누가 뭘 물으면 아는 데까지 대답해 주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자기가 모르는 것은 다른 친구한테 물어서라도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남달랐다.

그 뿐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모르면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들께 물어서까지 설명해주었다. 학생 대부분은 묻는 것을 약간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주저하는데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 주니 학급 친구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며 모르는 것은 전부 그에게 떠넘겼다. 시쳇말로 인기 짱이었다. 장난 끼 섞여 시작된 그의 질문 대행이 차츰 본격화돼, 질문에 관한 한 학급대표처럼 되었다.
 
그가 입학할 때 성적은 중위권이었다. 그러나 학기가 바뀌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적이 무섭게 향상되었다. 질문을 위해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다니다 보니 선생님들간에도 이미 명물로 통했는데, 성적까지 급성장하니 모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그의 질문대행에 있었다. 모르는 것을 물어서 이해하는 것도 적잖은 소득인데, 그걸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야했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아는 것과 남에게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설명하기 힘들고, 자기도 잘 모르면서 우물우물 적당히 대답하면 상대가 제대로 이해할 턱이 없다. 그 학생은 질문을 통해 모르는 것을 알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체득한 것이다. 그러니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결과 졸업 때는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최상위권 대학에 거뜬히 합격했다.
 
그는 친구들의 질문을 대행해주며 인기만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까지 차곡차곡 쌓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 친구들이 모두 그의 공부를 도와준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질문의 힘이다. 고대 중국의 위나라 대부 어( )는 행실이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죽은 뒤, 받은 시호가 '문(文)'이라는 존칭이므로 제자가 이상히 여겨 공자에게 묻자 '그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不恥下問. 불치하문)'며 그 타당성을 부여했다. 행실이 문제지만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묻는 점은 별도로 봐주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평소에도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묻기를 생각하라(疑思問.의사문)'며 질문을 중시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물어야 하고, 묻는 대상도 위아래 구분 없이 그 방면에 잘 아는 이라면 누구든지 꺼리지 말고 물으라고 한 것이다. 공자의 정통을 이어받은 증자 역시 '유능해도 능하지 않은 사람에게 묻고, 학식이 많아도 적은 이에게 묻는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이능문어불능 이다문어과)'라 하여 자신의 지식을 깊고 넓게 하는 데에는 질문이 최선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묻기를 주저한다.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생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에서도 그런 경향이 적지 않다. 특히 지위, 학력, 나이 등이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라도 물으면 될 일을 묻기는커녕 그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윽박지르기부터 하는 상사들이 많다. 이른바 체면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이들 가운데 이처럼 속 좁은 사람이 많은데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소크라테스도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무지하다는 점이다'라고 하여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매우  하찮고 왜소한 것임을 역설했다.  

모르는 것은 지위,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물어야 한다.  '밭갈이는 사내종에게 묻고 길쌈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한다.(耕當問奴 織當問婢. 경당문노 직당문비)'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학식이 뛰어나도 세상일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처럼 나서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가 모르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못난이들이 많다.   

'공자가 구슬을 꿰다(孔子穿珠. 공자천주)'도 마찬가지다. 공자가 구슬을 선물 받아 실로 꿰매려는데 그 구멍이 아홉 구비나 되어 쉽지 않았다. 생각 끝에 바느질하는 아낙네라면 방법을 알겠구나 싶어 뽕잎을 따던 여자에게 물었다. 천하의 공자가 그렇게 애쓰던 문제를 아낙네는 간단히 해결했다. 실을 개미허리에 묶은 뒤 구멍에 집어넣고, 반대편에는 꿀을 발라놓으라고 했다. 개미가 꿀 냄새를 따라 반대편 구멍을 찾아가니 자연히 실이 꿰매졌다.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물으면 5분 바보, 묻지 않으면 영원한 바보'라는 말처럼 몰라도 묻지 않으면 평생 바보가 되는 것이다.

'교육마당 21' 4월호 (20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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